“가끔 상상을 한다. 만약 이날 그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터미널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산다는 것은 매순간 선택이다. 설령 그것이 외나무다리라도 선택해야만 한다. 전진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아님 멈춰 설 것인가. 결국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시점은 과거 그 무수한 선택의 결과인 셈이다. 난 그날의 전화를 받았고 터미널로 향했으며,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는 지금의 현재를 맞았다”

이야기를 `삼천포`에 빠트려보자.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시골에서 상경한 대학생의 서울 생활과 사랑을 코믹하게 그려내 인기를 끌고 있다. 삼천포에서 올라온 `삼천포(김성균 분)`는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뱉어내는 돌직구 스타일이다.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자전거 무전여행을 한다고 다짐해 보름 간 서울을 떠나려했던 사내다. 그리고 여수에서 올라온 조윤진(도희 분)과 매번 티격태격하는 앙숙관계다.
삼천포 인생은 단 하나의 선택으로 바뀌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말을 못하는 윤진의 어머니가 서울 터미널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다는 한 시민 전화를 받고 나서다. 그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여러 번 서성이다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윤진이 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삼천포는 여행을 그만두고 윤진 어머니와 김밥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를 챙겨준 삼천포가 고마워 윤진과 관계는 좋아지고 2013년 그들은 이미 행복한 부부가 돼있었다.
우리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삼천포 말처럼 한 길뿐인 외나무다리라고 해도 선택은 해야한다. `간다·멈춘다·돌아간다` 선택지는 3개다. 현실에서 선택은 결과로 이어진다. 만약 `간다`고 선택 했을 때는 `멈춘다·돌아간다`는 두가지 보기가 답안에서 지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가 돼 후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물리학에서는 지워진 두 선택지를 완전히 잊지 않는다. 양자역학에서 전화를 받을까 서성이는 삼천포는 중첩된 상태다. 삼천포 선택 과정이 물리학에서는 `관측` 과정이다. 실제로 관측하기 전에는 위치나 에너지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서 가능한 모든 곳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풀어낸 `슈뢰딩거 방정식`은 고전물리학과 달리 입자의 상태를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에너지 상태(파동함수)로 나타낸다. 삼천포를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풀어 다음 상태를 나타낸다면 `전화를 받는다·받지 않는다`가 동시에 나온다는 의미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삼천포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시청자가 TV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관측 행위 결과다. 그가 서성이는 순간 TV가 꺼진다면 TV 속 삼천포는 `전화를 받은 삼천포`와 `전화를 받지 않은 삼천포`로 나눠진다. 이 문제를 풀어낸 것이 닐스 보어 등이 확립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꺼진 TV 속 삼천포는 `전화를 받는다(99%)`, `전화를 받지 않는다(1%)`처럼 확률로 존재하다 TV를 켜는 순간 받는다(100%)로 바뀐다고 설명한다. 양자역학 계산과 예측에 잘 맞는 방법이지만 과학적 논리가 빈약하고 쉽게 문제를 풀어낸다는 평가로 슈뢰딩거 본인은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펜하겐 해석을 반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미국 휴 에베렛 3세다. 그의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TV를 다시 켜 관측을 한다고 해도 `전화를 받지 않은 삼천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관측하는 순간 삼천포는 2개로 나눠져 한명은 전화를 받지 않고, 다른 한명은 전화를 받는다. 삼천포의 세계가 `갈라져` 다중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은 삼천포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윤진과 결혼하지 못하는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물론 다세계 해석도 한계가 있다. 코펜하겐 해석처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실험과 예측으로는 사라진(다고 느끼는), 전화를 받지 않은 삼천포를 확인할 도리가 없다. 실제로 많은 물질로 이뤄진 세상이 그렇게 쉽게 분리(갈라짐)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삼천포의 말대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은 과거 선택의 결과다. 잘못된 선택인지, 올바른 선택인지 쉽게 알 수 는 없다. 그러나 다중우주 이론은 지금 행복한, 또는 불행한 자신 외에 반대편에 서 있을 `나`를 상상하게 한다. 에베렛 3세대로라면 우리는 선택할 때마다 새로운 우주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삼천포와 윤진의 이야기를 그려낸 에피소드의 부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