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59>ETRI, 퀄컴을 쏘다(상)

1998년 10월 28일.

모두 만류했다. 승산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현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 고문)은 소송이라는 강공책을 꺼내들었다. 상대는 CDMA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퀄컴. ETRI와 퀄컴 간 CDMA 기술료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됐다. 한국 공공연구기관이 미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한 일도 처음이었다.

Photo Image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이 1998년 10월 28일 미국 퀄컴사를 CDMA기술료 분배금에 관한 계약위반으로 ICC에 제소했다고 밝혔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정선종 ETRI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퀄컴을 CDMA 기술료 분배금에 관한 계약위반으로 최근 국제상업분쟁기구인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제소했다”며 “ICC 측이 ETRI에 보낸 접수확인 전문도 받았다”고 밝혔다.

한때는 기술개발 동반자였던 ETRI와 퀄컴 간 기술료 분쟁이 법정으로 비화한 것은 1994년 4월 체결한 공동기술개발계약(JDA)을 놓고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ETRI는 셀룰러와 PCS는 기술 방식이 동일한데도 퀄컴이 PCS 관련 기술료를 배분하지 않았다며 이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퀄컴은 기술료 분배는 셀룰러에 국한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ETRI는 제소와 관련해 국내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 대형 로펌 두 곳에 대응 방안을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ETRI와 퀄컴은 이후 3년여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양측 주장과 반박이 반복했다. 결과는 사필귀정이었다. ICC는 ETRI 손을 번쩍 들어 주었다. ETRI의 완승이었다.

ETRI 승소는 한국 공공연구기관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막대한 로열티 못지않게 ETRI의 위상을 세계에 한껏 과시한 쾌거였다.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건 정치판만의 일이 아니었다. 기술세계도 이익 앞에선 모든 것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퀄컴과 기술료 협상은 이보다 2년 전인 양승택 원장(ICU 총장, 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재임 시절 시작했다. 양 원장은 1996년 5월 6일 직할부서장 회의에서 “외부 변호사에게 의뢰해 퀄컴과 계약서를 분석해 PCS로 간다든지 아니면 광대역 CDMA로 간다든지 우리의 한계가 무엇인지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양 전 원장의 증언.

“퀄컴과는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공동 기술개발을 한 동반자이기도 해 소송까지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게 잘 안 됐습니다.”

박항구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현 소암시스텔 회장)이 대책반장을 맡고 이혁재 부장(현 KAIST 명예교수)과 한기철 부장(현 ETRI 책임연구원)이 반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CDMA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이었다.

박항구 당시 단장의 회고.

“연구만 한 사람들이어서 법률적인 문제를 잘 몰랐습니다. 장덕순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현 인터넷주소분쟁조정위원회 위원)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1992년 ETRI가 퀄컴과 로열티 계약서 작성에 관여한 바 있었습니다. 기획부서에서 행정지원을 받았습니다.”

ETRI는 장 변호사에게 퀄컴이 ETRI 동의 없이 PCS 특허를 허락하면 공동개발계약(JDA)에 저촉되는지, 이 경우 ETRI가 취해야 할 법적조치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장 변호사는 “퀄컴은 ETRI 동의 없이 언제라도 제3자에게 PCS 특허를 허락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이런 보고를 받은 양승택 원장은 박 단장에게 “장 변호사에게 JDA 기술료 배분 적용범위에 자문을 구하라”고 말했다.

이 무렵 ETRI에서 20여년 근무하면서 TDX와 CDMA 개발의 성공신화를 이룬 박항구 단장이 그해 9월 9일 현대전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승택 전 원장이 회고록 `끝없는 일신`에서 밝힌 내용.

“평생을 연구원으로 살아온 사람인데 기업체에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ETRI는 훌륭한 원장 재목을 놓치는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최대한 예우해 보내도록 했다.”

후임 단장은 이충근 박사(한솔PCS 전무 역임, 현 이피앤텍 대표)가 임명됐다. 퀄컴과의 기술료 협상은 진전이 거의 없었다.

그해 9월 20일 양승택 원장은 “퀄컴과 기술료 문제는 변호사를 선임해 강력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ETRI는 세종합동법률사무소를 방문해 재미 김준범 변호사 등과 대응전략을 협의했다.

이후 10월 13일 장 변호사는 “ETRI는 퀄컴으로부터 국내업체가 지급한 기술료의 20%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TRI 주장과 일치하는 의견이었다.

이어 10월 20일 양승택 원장은 “퀄컴이 ETRI와 협의 없이 PCS를 허락하면 계약위반으로 문제를 제기하라”고 대책반에 지시했다.

대책반은 수시로 회의를 열어 기술료 범위와 지급시기, 분쟁해결 방안 등 추진전략을 구체적으로 마련했다. 유력 국내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의 의견도 수렴했다.

이듬해 1998년 1월 21일 이충곤 단장과 이혁재 부장, 김광호 사업개발실장, 김준범 변호사 등이 퀄컴을 방문해 1차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협상은 실패했다. 퀄컴 측이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대책반은 24일까지 샌디에이고에 머물다가 소득 없이 귀국길에 올랐다.

이충근 전 단장의 회고.

“우리는 퀄컴 측에 PCS도 기술료를 ETRI에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주장했습니다. 그런데도 퀄컴 측은 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혁재 전 부장의 말.

“퀄컴에서 당시 폴 제이콥스 부사장(현 회장)을 만났습니다. 회장 아들인 그가 업무를 총괄했습니다. 협상으로 문제를 풀자고 했지만 답을 주지 않았어요.”

김광호 전 실장의 기억.

“퀄컴 측에 `공공연구기관이 미국 기업과 소송을 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 그러니 물밑 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했어요. 퀄컴 측이 `입장 정리가 필요하니 기다려 달라`고 해 호텔에서 기다렸지만 답을 주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푸대접이었어요. 울화가 치밀었어요.”

이후 ETRI 내부에서 퀄컴 측을 보는 시각에 난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해 2월 10일 퀄컴 측 변호사인 스티브 알트먼이 샌디에이고에서 만나 2차 협상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1992년 퀄컴과 ETRI 개발계약에 관여한 변호사였다.

ETRI는 내부 회의를 열어 2월 26일부터 이틀간 퀄컴 측과 2차 협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표단으로 이충근 단장과 이혁재 부장, 김광호 실장, 김준범 변호사를 선정해 퀄컴 측에 통보했다. 출국 전 대표단은 사전에 협상전략을 논의하고 퀄컴 측에 CDMA 기술료를 지불해 줄 것을 독촉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대표단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퀄컴과 만나 2차 협상을 벌였으나 양측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ETRI 주장이 퀄컴 측에 먹히지 않았다.

협상에 진전이 없자 남은 방법은 국제상업분쟁기구에 제소하는 일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JDA 내용에 양측이 이견이 있을 경우 협상을 하고 만약 타결이 안 되면 중재로 간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ETRI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회도 퀄컴의 CDMA 기술료 배분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특히 김형오 의원(국회의장 역임)이 일에 앞장섰다.

그해 3월 19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회의실.

김형오 의원이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현 S&T중공업 회장)을 상대로 퀄컴의 기술료 배분문제를 거듭 질의했다.

이날 질의답변 내용을 들어보자.

▲김형오 의원=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한 사항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PCS 기술료를 ETRI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추정해 보니 600만달러는 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금액을 퀄컴은 못주겠다고 합니다.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은 한국이 먹여 살리고 한국으로 인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응을 잘못해 퀄컴 측이 도도하게 나오고 있어요. 특별대책반이라도 만들어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 의원은 1997년 10월 1일 정통부 국정감사에서 강봉균 장관(청와대 경제수석, 재경부 장관, 16·17·18대 국회의원 역임)을 상대로 퀄컴 기술료 문제를 처음 질의했다.

▲배순훈 장관=지난해 국감에서 지적하신 퀄컴 문제는 내가 내용을 잘 몰라서 해당 실장이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안병엽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장관, ICU 총장. 17대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이 답변대로 나섰다.

▲안병엽 실장=정부는 퀄컴과 기술료 재협상을 위해 지난해 11월 ETRI 안에 변호사를 포함한 대책반을 구성해 현재 운용 중입니다. 두 차례 퀄컴 측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아직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협상하고 있습니다.

▲김형오 의원=아직까지 퀄컴에서 돈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안병엽 실장=1995년 하반기와 1996년도 상반기분 160만달러는 받았습니다. 그 이후 1996년 하반기부터 1997년 상반기분은 지난 2월 14일 840만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술료 상환금액은 지금 협상 중입니다.

▲김형오 의원=원천적으로 잘못된 계약으로 우리가 엄청난 국익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특별대책반을 구성하고 국제 변호사들을 투입해 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야 합니다.

▲배순훈 장관=잘 알겠습니다.

김형오 전 의원의 회고.

“퀄컴은 한국을 봉으로 생각했습니다. 1997년 정통부 국감에서 처음 퀄컴의 CDMA 기술료 문제를 제기했는데 성과가 없었어요. 퀄컴 최고경영자(CEO)에게 편지를 보내고 국회대책반을 구성해 퀄컴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해 3월 30일 ETRI는 이사회를 열고 정선종 위성통신기술연구단장을 새 원장으로 선임했다. 양승택 원장은 ICU 총장으로 선임됐다. 정 원장은 퀄컴 기술료 협상전략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인파이터식 강공법을 선택했다. 또 다른 전략의 시작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