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그의 아들인 히데요리를 옹립하려는 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한 다이묘 간에 벌어진 최후의 결전이 `세키가하라 전투`다. 전자가 서군, 후자가 동군이라 불린 이 두 세력은 지금의 도쿄 근처인 세키가하라에 진을 치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9만명의 서군이 학익진 형태로 6만명의 동군을 완전 포위했다. 더구나 서군은 사사오산, 마쓰오산 등 주변의 유리한 고지를 미리 장악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형국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전투는 서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1600년 10월 21일 시작된 이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천하를 손에 넣고 에도 막부를 연다.
압도적인 전력과 유리한 진지를 구축한 서군이 패배한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서군은 전투할 의사가 그다지 없는, 의리상 전장에 모인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서군의 치명적인 약점은 주력부대인 이시다 미쓰나리 군 이외의 다이묘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싸우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모여든 다이묘들은 모두 권력욕만 큰 이시다 미쓰나리를 경계했다. 이런 약점을 간파한 동군은 중앙에 포진한 미쓰나리 군을 노려 집중 공격했다. 이윽고 미쓰나리 본진이 무너지자 서군은 일거에 붕괴됐다.
지금의 게임 산업은 일본 전국시대의 서군과 너무나 유사하다. 게임 산업에 적대적인 세력은 약한 고리인 `중독성`을 집중 공략한다. 지난 10월 황우대 새누리당 대표의 연설에서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규정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당 의원들이 줄줄이 중독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통과와 상관없이 향후 이런 규제안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게임 업계 일부에서는 한류의 중심 콘텐츠는 게임이라며 산업논리를 내세워 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산업 논리와 청소년 보호 논리가 충돌하면 항상 후자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이 아무리 매출이나 성장성이 크다고 해도 술, 마약 같은 중독 산업이라면 지지해 줄 학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게임 이용자의 반대 서명 운동이 활발하지만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게이머가 서명을 해도 이것이 반게임 세력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게임 업계가 전략 부재 속에 고립돼 있다는 점도 일본 전국시대의 서군과 유사하다. 전략 부재는 뼈아프다. 지난 세월 동안 어떤 대응 전략을 수립해 적대적 세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거시적 전략이 없었다.
대응 주체도 없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계열사로 매각돼 버렸고, 넥슨은 일본에 상장된 회사다. 한게임은 NHN과 분리됐으며 사행성 이슈 대응에 고전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 게임 산업에 우호적인 문화부나 미래부는 너무도 강경한 여성가족부와 여당 분위기에 짓눌려 눈치만 보고 있다. 학계나 언론계도 게임 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평소 주변의 우군들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지원세력을 가진 게임 산업이 지금처럼 지리멸렬하게 대응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임 산업은 3000만명의 우군을 가졌다. 전체 한국 인구의 3분의 2가 스마트폰 게임 등 어떤 종류의 게임을 한다고 계산하면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게임을 너무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이용자들이 게임 업계를 더불어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역설 때문에 게임 산업은 지금의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일본 전국시대의 서군이 무너진 이유는 전략 부재의 지리멸렬함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게임 업계는 거시전략을 수립함과 동시에 학계, 언론계, 정부, 시민단체 등과 광범위한 연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직을 바탕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과 행동을 제시해야 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