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박사, 이 곳 대덕은 명당 중 명당이오. 건설부 장관과 함께 헬기를 타고 돌아보시오.”
1973년 초 고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을 찾은 최형섭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지도를 가리키며 내린 지시다.

이 한마디에 따라 2770만㎡규모의 대덕연구단지(현 대덕특구)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덕은 전체 1280가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깡촌`이었다. 전체 면적의 20%에 포도와 복숭아를 재배했다. 40년이 흐른 지금 대덕은 과학기술의 메카를 넘어 창조경제 실현의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장도 내놨다.
대덕특구는 가내 수공업 체제에서 중화학공업을 거쳐 지식경제 기반사회로 나아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사의 주춧돌을 놨다. 정보통신은 세계 초일류 수준에 도달했다. CDMA를 비롯한 원자력, 항공,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연구교육단지로 조성 시작=1973년 1월 17일,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이 박정희 대통령 연두순시 때 홍릉연구단지를 넘어서는 제2연구단지 건설 계획을 업무보고에 담아 놓은 게 시발점이다.
당시 `연구교육단지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선박, 기계, 석유화학, 전자 등 전략산업 기술연구기관을 단계적으로 설립할 것과 서울에 산재해 있는 국공립연구기관을 한 곳에 집결시켜 연구 기능을 극대화 시키자는 것이 골자다.
목표는 세계적인 과학두뇌도시 건설이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연구단지 조성 필요성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우선 중화학공업의 기술지원을 위해 조선설계, 금형설계·제작기술, 주물기술, 정밀기계설계·제작기술 4대 전략산업 기술별로 전문화된 연구기관 신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기관을 한 곳에 집중시켜 시설의 공동 활용과 투자 효율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노림수에 포함됐다. 연구원 및 기술정보의 상호교류를 위해 지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울에 집중돼 있는 국립시험연구기관을 연구단지로 집결시켜 연구 능률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 등도 담았다.
건설부 고시에 따라 1973년 11월 30일 대덕이 연구학원도시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첫 연구소 건설은 1974년 3월 대덕연구학원도시로의 진입로 건설과 함께 한국표준연구소, 한국선박연구소(현 한국기계연구원)가 건립에 들어갔다. 1975년에는 한국화학연구소, 1977년에는 한국핵연료개발공단(현 한국원자력연구소)이 순차적으로 건설 사업에 돌입했다.
◇입주 1호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1978년 대덕의 명당에 자리 잡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도룡동 1번지에 위치한 입주 1호 연구소다. 이후 출연연구기관의 입주가 가속화됐다.
1980~1990년대 출연연과 함께 쌍용중앙연구소 등 민간기업 연구소까지 가세하면서 자연스레 과학기술의 메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국립중앙과학관이 1992년 11월 준공됐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개최한 대전엑스포는 대덕이 글로벌을 지향하는 계기가 됐다.
1997년 불어닥친 IMF 위기는 대덕연구단지 기능을 위축시켰다. 하지만 위기는 창업의 기회로 이어져 퇴출된 연구원들의 벤처 붐에 기여했다.
대덕이 연구와 교육기능에 기업 생산활동이 접목된 전환점은 1999년 도래했다.
2003년은 대덕연구단지 30주년을 맞아 지식경제로의 발전을 위한 혁신클러스터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시발점이 됐다. 산업 및 기업 관련 기관 등이 대학 및 연구소 등과 연계해 상호협력 및 네트워킹을 통해 새로운 경제동력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연구개발특구 지정으로 전환기 맞아=정부는 2005년 기존 대덕연구단지를 비즈니스 성과확산 중심의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지정했다.
연구개발특구는 기술·산업·지역정책 통합 및 구성원 간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해 지식 창출·확산·활용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 창업 활성화, 기업·국가 차원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2011년엔 대구·광주, 이듬해인 2012년엔 부산이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됐다.
연구개발특구 육성을 위한 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2005년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 설립됐다.
미션은 △연구성과 사업화 △벤처생태계 조성 △글로벌환경 구축 △특구 인프라구축 및 타 지역과 연계 등이다.
비전도 내놨다. 연구개발특구를 `지식창출-기술확산-창업 생태계가 약동하는 창조경제의 주춧돌이자 신성장동력 전초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대덕은 첨단융합산업, 광주는 광기반 융·복합 산업, 대구는 IT기반 융·복합 산업, 부산은 조선해양 플랜트산업을 집중 육성해 세계적인 거점으로 키워낸다는 복안도 내놨다.
대덕에는 현재 출연연을 비롯해 공공기관, 기업 등 모두 1401곳이 입주해 있다. 기업은 1312곳이다. 연간 16조6980억원의 매출을 창출한다.
박사인력만 1만333명을 비롯한 석사 1만856명 등 연구기술직 종사자가 2만7423명에 달한다. 기업 생산직 근무자는 3만6898명이다.
기술도 906건이 이전돼 999억6200만원의 기술 이전료를 거둬들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원자력연구원은 세계적인 원천기술을 통해 각각 169조8000억원과 34조4000억원의 경제유발효과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병한 대덕특구 기술사업화팀장은 “특구와 과학벨트 연계를 통해 혁신클러스터를 확대하고 국가R&D 허브 역할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오픈 이노베이션을 바탕으로 산학연 네트워크를 통한 기술이전과 사업화 지원을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