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창업보다 중요한 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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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에 만난 취재원 얘기다. 국내 명문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그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 창업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창업자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밟았다. 그의 지인 중에는 이미 스타트업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도,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도 있었다. 법인을 설립하기도 전에 정부에서는 주는 지원금도 받았다. 기자에게 연락이 온 것도 아는 지인을 통해서였다.

문제는 그가 가져온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잔뜩 부풀어 있던 기대가 실망감으로 추락했다. 너무 많은 기능을 한꺼번에 담는 바람에 애플리케이션 구동은 버벅거렸다. 직접 개발하기가 벅찬 내용이라 제휴해야 할 업체 리스트가 산적해 있었다. 당장 대기업이 뛰어들어도 1년을 꼬박 매달려야 나올까 말까 한 `거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만은 세계 최고였다. 얼마 전 연락이 된 그에게 서비스에 대해 묻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피봇(사업 아이템 바꾸기)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지원금을 지난해에 비해 두 배나 받았다”고 기뻐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해줬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기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다는 보도자료를 하루에도 여러 건 받는다. 새로운 기술이라고 하기엔 유사한 서비스가 범람한다. 미숙한 창업 지망생이 한국 사회에 설익은 `미투(me too)` 서비스를 계속 내놓는 까닭이다. 문제는 새 아이디어 없이 기존 히트작을 따라 만드는 풍조다. 앞서 언급한 취재원 제품은 기존에 있던 교육 콘텐츠를 모두 끌어다가 한데 묶은 것에 불과했다. 지금 한국에 얼마나 많은 사진, 동영상 공유 앱이 범람하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이 범부처적으로 이뤄진다. 투자에 비해 창업가적 도전 정신이 아직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필요하지 않은 기업과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건전히 성장시키려는 열정이 부족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창업은 분명히 늘었지만 진보적인 기술력과 개발자를 갖춘 업체들은 찾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 창업할 바에는 차라리 치킨을 튀기거나 커피를 내리면서 사람들에게 미식의 즐거움이라도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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