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을 주요 정보수집 대상국으로 지정해 무차별적인 정보를 수집한 정황이 포착됐다.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까지 도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타임스(NYT)가 전 미국 중앙정부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해 4일(현지시각) 인터넷에 공개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NSA는 한국을 주요 정보 수집국에 포함했다.
`미국 시긴트(SIGINT) 시스템 2007년 1월 전략 임무 리스트` 문서는 작성일로부터 12~18개월간 임무를 담고 있다.
이 시점은 노무현정부 말기와 이명박정부 초기로 한국과 미국 간에는 자유무역협정(FTA), 북핵 6자 회담, 전시작전권 등 민감한 현안이 산재했다. 문서에 따르면 NSA는 정보수집 대상국을 미국 이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초점지역(Focus Area)과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인정된 위험(Accepted Risk)으로 분류했다.
한국은 외교정책과 정보기관 활동, 미군 주둔지역, 전략 기술 네 부문에서 초점지역으로 분류됐다. 정보기관 활동 부문에서 한국은 중국·러시아·쿠바·이스라엘·이란·파키스탄·북한·프랑스·베네수엘라 9개국과 함께 초점지역으로 분류됐다.
미국 주둔지역 부문에서는 전쟁 작전계획인 `작계 5027`이 초점지역에 들어갔다. 작계 5027은 2012년 8월 한반도 안전보장과 연합방위태세 유지를 위한 연례 지휘소 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에서 마지막으로 적용됐다.
NSA는 지난 4월 시리아 화학무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기후변화 등의 문제 논의를 위해 오마바 대통령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 사전에 도·감청해 반 총장의 예상 발언 요지를 미리 빼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호주·일본 등에 있는 미군 기지와 공관에 특별정보수집부(Special Collection Service)를 설치하고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NSA는 프랑스·독일 등은 외교적 이익을 위해, 일본·브라질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감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네수엘라·중국·북한·이라크·이란·러시아 등 6개국은 `지속적인 감시 대상(Enduring Targets)`으로 분류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보도와 관련, 미국 측에 우려를 표명하고 상세 내용을 설명할 것을 요청했다. 정부 당국자는 “보도 직후 미국 측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납득할 만한 설명을 신속하게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이와 관련한 추가 조치가 있으면 전달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도·감청 정황이 드러나지 않으면 구체적인 외교적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던 정부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해명을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도청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정부는 지난 7월 제기된 우리나라를 포함한 38개국 주미 대사관에 대한 NSA의 도청 의혹, 지난달 나온 35개국 지도자에 대한 NSA의 도청 의혹에도 각각 사실관계 확인을 미 측에 요청한 바 있다. 이 중 주미 대사관 도청 의혹과 관련, 미국 측은 정보활동에 대한 재검토 방침을 우리 측에 전달해 왔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m,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