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삼성전자가 간과한 특허경영 덕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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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사이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눈에 띄는 두 가지 결과가 있었다. 하나는 3년 넘게 확전 양상을 보이던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명령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려 13년이나 끌어오던 한국 하이닉스와 미국 램버스의 특허전쟁이 지난 6월 하이닉스가 2억4000만 달러를 램버스에 지불하는 합의로 끝을 맺은 것이다. 이 두 사건의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지키지 못한 특허경영의 덕목을 찾을 수 있다.

ITC는 애플의 `아이폰4`와 `아이패드2` 수입금지 명령을 지난 6월 4일에, 삼성전자의 `갤럭시S`와 `갤럭시S2` 수입금지 명령을 지난 8월 9일에 각각 내렸다. 미국 대통령은 ITC의 이 명령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 제품의 수입금지 명령에 대한 거부권은 지난 8월 4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행사했지만,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명령 거부권은 지난 10월 9일 거절했다.

국내 언론과 네티즌은 ITC가 5번이나 미룬 힘든 최종 결정을 오바마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냐며 보호무역주의 부활로 몰아갔지만, 오바마가 제시한 사유들은 특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삼성전자가 침해한 애플의 특허는 `상용특허`지만, 애플이 침해한 삼성전자의 특허는 `표준특허`다. 표준특허는 동종업계 누구나 평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하는 `FRAND` 규정 적용을 받는다. 오바마는 삼성전자의 표준특허를 사용한 애플 제품의 수입금지는 “미국 경제의 경쟁 여건과 미국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 때문에 거부권 행사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즉, 삼성전자는 막대한 투자를 해서 기술개발과 관련 특허는 취득했지만 그 기술을 만들어도 너무 잘 만들어 특허권 행사를 할 수 없게 자승자박을 한 것이다. 미국 특허전문회사인 아이런웨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LTE 표준특허의 9.36%인 1177건을 소유하여 관련 표준특허 보유 1위라고 한다. 특허경영에서는 세계 1위 명분도 좋지만, 실리가 우선적인 덕목이다.

하이닉스와 램버스 간 특허전쟁은 램버스 소유 특허를 무효화하기 위해 하이닉스가 2000년 제소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와 별도로 램버스는 삼성전자를 2005년 6월 특허침해로 제소했고, 삼성전자는 2010년 1월 총 9억 달러에 합의를 했다는데 그 내용이 이상하다. 9억 달러 합의금 중에 2억 달러는 밀린 로열티로, 5억 달러는 향후 5년간 매 4분기에 2500만 달러를 러닝 로열티로, 그리고 2억 달러는 램버스의 지분인수로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것이 빈번한 비즈니스 사회에서 소송 대상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삼성전자의 램버스 지분인수는 해당 특허가 유효해 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소송 중인 회사들로부터 높은 침해배상액 또는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들어있어 보였다.

2006년 4월 미국법원은 하이닉스가 램버스에 4억 달러의 특허침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램버스가 1998년부터 3년간 중요자료를 불법폐기(spoliation)했다는 주장을 지속해왔고, 이런 주장은 2012년 9월 연방항소법원(CAFC)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판결은 `더러운 손(unclean hand) 형평법(equity law)`을 적용해 램버스에 벌금 2억5000만 달러를 부과하고 이를 하이닉스의 4억 달러 배상액에서 공제하라는 판결을 했다. 즉 하이닉스는 2006년 배상판결에서 7년을 더 싸워서 배상액을 약 1억5000만 달러로 낮춘 성과를 거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는 왜 2억4000만 달러에 램버스와 합의를 했는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침해보상 액수만 보면 하이닉스가 삼성전자와 비교도 안될만큼 소송을 잘 대응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주도면밀하고 이성적인 삼성전자가 왜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미국 법체계에 기본적으로 담겨 있는 형평법에 대한 삼성전자의 무지 또는 불신이라고 본다. 전 세계에 판매하는 제품만 현지화할 것이 아니라 특허경영 전략도 현지화가 필요하다.

둘째, 급한 성격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한민족의 병폐를 삼성전자도 글로벌 특허경영에서 범했다고 본다. 하이닉스가 램버스의 삼성전자 제소 이전부터 주장해온 `인멸(spoliation)` 이슈에 대한 CAFC의 최종판결 이후 또는, 미국 특허상표청이 이른바 `Bath patents`라는 램버스의 쟁점 특허무효 결정을 한 2012년 초까지 삼성전자가 램버스와 합의를 미루었다면 합의금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삼성전자와 램버스의 합의 내용에 쟁점 특허가 무효화될 경우에 합의금 삭감·면제조항을 포함했다면 필자의 얘기는 전혀 무관하겠지만). 급하면 쉬었다 가고,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했다. 특허경영 덕목 중에 하나는 `우심호행(牛心虎行)`이다.

삼성전자의 애플과의 특허전쟁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특허전쟁에서 무기들로 사용되는 동일 또는 유사한 지재권들이 이를 심사하는 국가에 따라 상이한 판결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통신 관련 특허를 애플이 침해하지 않았다고 일본과 미국법원이 판결하는 반면에 한국법원은 동일한 특허에 대한 동일 제품의 침해판결을 승인했다. 또 스티브 잡스 특허로 알려진 `밀어서 해제(slide to unlock)`는 독일법원이 무효판결을 했다. 반면에 유사한 태블릿PC 디자인 특허를 네덜란드 법원은 비침해로 결론냈다.

이처럼 상이한 판결의 결과는 글로벌 IP 맹주인 삼성전자도 각국의 고유한 지식재산권 이해와 해석에 미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는 특허경영에 필요한 또 하나의 덕목이다.

신피터경섭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iplaw@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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