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11/19/sdaaia-as1.jpg)
“그거 말이죠, 현금입출기(ATM) 처음 나올 때랑 비슷한 거예요. 그 전에는 몇 만원 빼려 해도 은행에 가야 했잖아요. 지금 누가 그리 합니까. 원격진료 불가 주장은 간단한 진료도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요?” 최근 한 회의에서 원격진료가 화제에 오르자 한 참석자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한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이 순조롭다면 2015년 하반기 시행이다. 병원을 찾지 않고 집에서도 진료를 받는 시대가 다가왔다.
한 환자가 시간을 쪼개 병원에 간다. 번호표를 받고 몇 시간 기다린다. 의사가 몇 마디 묻더니 가벼운 처방전을 내준다. 5분도 채 안 걸린다. `이럴 바에는 같은 돈을 주더라도 그냥 전화로 끝내면 될 것을`이란 생각이 든다. 마침 원격진료가 허용된다니 반갑다.
의료계는 발칵 뒤집혔다. 대면 치료가 근간인 의료체계를 붕괴시킨다며 개정 철회를 요구했다. 총궐기, 투쟁과 같은 과격한 구호가 나온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집단행동 움직임이다. 의료계 내부 갈등이 공급자와 수요자 간 대립으로 바뀐 게 달라졌을 뿐이다.
정부가 허용하려는 원격진료는 만성질환 재진 환자나 노인·장애인과 도서·벽지 주민 등으로 제한됐다. 웬만하면 허용한 미국과 비교해 초보 수준이다. 그런데도 의료계 반대가 격렬하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보다. 의료계는 부인하겠지만 밥그릇 깨질까 하는 두려움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관련 기업만 배불리게 하는 정책`이라는 비난 속에 그 속내가 읽힌다.
헬스케어 기업에 기회가 온 것은 맞다. 다만 의료계가 모르는 게 있다. 헬스케어 기업은 당연히 올 미래를 보고 막대한 투자로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건만 의료계 반발에 번번이 부닥쳐 손가락만 빨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거의 고사 직전이다.
의료계가 더 모르는 것은 원격진료 핵심 이슈가 관련 기업 이익이 아니라 의료 수요자 편익이라는 사실이다. 늘 의료계 이익을 뛰어넘지 못한 그 수요자 편익 말이다.
나아졌다고 하나 환자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똑같은 검사를 받는 일은 여전하다. 의사가 쓰는 질병 분류와 표준용어도 병원마다 제각각이다. 의료 데이터 공유만 보면 변변한 통신 인프라조차 없는 나라 병원보다 못하다. 첨단 시설을 자랑한 스마트병원도 문밖의 환자에게는 제3 세계 병원과 다를 바 없다. 국민 건강 지킴이라고 자부하는 의료계가 다른 것은 몰라도 데이터 공유에는 앞장서야 했다.
의료계는 대면 진료 없는 원격진료 부실을 성토한다. 그런데 외국엔 원격진료는커녕 환자 데이터만으로 진료하는 의사직이 생겼다. 의료계는 원격진료 장비를 갖추기 힘든 동네병원이 다 죽게 됐다고 항변한다. 엄살이다. 되레 대형병원에 밀려 몰락한 동네병원이 되살아날 수 있다. 동네병원이 환자 개별로 구입하기엔 부담되는 장비를 갖추고 협진까지 펼치는 지역 밀착 진료센터로 거듭날 수 있다.
병원들을 특진과 같은 편법으로 내몬 현 의료정책에 분명 문제가 있다. 수가제를 비롯해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전에 의료계가 할 일이 있다. `면허사업` 독점 속에 제 이익만 추구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의료계 일각의 반값 진료비 열풍부터 원격진료 허용, 특진제 축소까지 왜 요즘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지 제대로 읽어야 한다. 거의 모든 시장의 주도권이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넘어갔다. 의료계는 아직도 의료 시장과 상관없는 얘기로 여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렇게 모르니 혁신 대상이 됐다. 밀려온 거대 파도를 거스르기보다 그 물결을 타는 게 현명하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