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망신당한 오바마…"이게 다 IT 때문"

IT케어 못한 오바마케어

백악관은 고개를 숙였다. 주무 부처 장관은 옷을 벗어야 할 처지다. 웹사이트 하나 때문이다.

모든 미국인의 의무 가입을 뼈대로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이 웹사이트 문제에 발목 잡혔다. 건강보험개혁법에 따라 18세 이상 미국 국민은 내년 3월까지 `온라인 건강보험 거래소(The Health Insurance Marketplace)`에서 가입을 해야 하지만 정작 웹사이트(HealthCare.gov)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슈분석]망신당한 오바마…"이게 다 IT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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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대국민 정책이 `IT케어`를 못해 틀어졌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강국에서 일어난 초유의 사태다. 미국 언론이 이를 두고 건강보험 `대참사`라 부를 정도다. 엉성한 IT 지휘·관리 체계로 잘못 만들어진 시스템이 미치는 사회적 여파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계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미국의 전자정부 실책, 남의 일일까.

◇어렵게 출범한 건강보험 개혁안…`먹통 웹사이트`로 얼룩

지난 10월 1일 문을 연 웹사이트에 800만명 이상이 몰렸지만 이틀간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당황한 미국 정부는 `접속자 수가 너무 많은 탓`이라 변명했다. 전문가들은 못 미덥다며 정부의 해명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재앙의 서막이었다.

사이트는 2주간 일부 기능만 작동하다 한 달째 오류가 속출하거나 속도가 느리고 일시적 불통이 계속됐다. 근본 설계부터 잘못된 시스템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웹사이트가 뜻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며 빠른 시정을 약속했다. 건강보험 개혁안을 추진하는 정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 마릴린 테베너 센터장도 하원 세입 위원회에서 공식 사과했다. CMS는 사이트 개발을 총괄하며 개혁안 추진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의회는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애초부터 개혁안을 반대했던 공화당은 여세를 몰아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예고된 재앙이라며 법 집행 유예를 주장하고 나섰다.

팀 머피 공화당 하원의원은 “사이트 개발에 55개 기업과 5억달러(약 5273억5000만원) 이상을 투입하고도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난하며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책임을 물었다. 개혁안을 밀었던 민주당까지 백악관 책임을 추궁하기 이르렀다. 건강보험 가입자 수는 한 달이 지난 현재 70만명에 머무른다.

◇잘못된 지휘 체계가 초래한 `인재(人災)`

IT 참사를 일으킨 전말이 속속 드러났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개발 참여 기업들과 전문가들이 지적한 가장 큰 과오는 `사람`과 `관리 방식`에 있었다. 공공 IT 프로젝트의 곪은 단면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큰 프로젝트 전반을 한눈에 내다보며 책임을 져야할 책임자가 없었다는 사실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건강보험 개혁법에 맞춰 복잡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조율하면서 온라인 거래소를 총괄할 단일 리더가 없었다”며 “의사결정에 관여한 수십명의 관리와 분산된 관료 조직이 재앙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웹사이트 개발 장소는 담당 기관인 CMS에서 약 64㎞ 떨어져 있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은 각기 다른 상관에게 승인 받아 진행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CMS는 분산된 `사일로(Silo)`식 관리 구조를 가진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었고 거대한 사이트를 책임질 일원화된 조직도 없었다”고 전했다. 사일로는 곡식을 저장해두는 굴뚝 모양의 창고를 이르는 말이다. 각 팀이 다른 팀과의 협력과 교류 없이 내부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마치 곡식창고와 닮았다고 해서 유래한 말이다.

개발 당시 상황을 전한 이들은 “각기 다른 부서별 문화와 정치적 방향이 부딪치는 가운데 데드라인의 압박을 크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문제가 발견돼도 고칠 수 있는 체계가 없었고 시간까지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들은 IT를 잘 알지 못했다. 비벡 쿤드라 전 백악관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최신 기술이 어떻게 설치돼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관리자가 여러 결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소수 비전문 내부 인력이 곁눈으로 결정을 하면서 책임을 미루는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근본적 코드 설계부터 엉망이 됐다.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로이터는 “사용자 계정을 만들거나 승인을 받기 위해 PC에서 동시에 너무 많은 파일과 소프트웨어를 불러오도록 잘못 설계돼 단순한 수정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폭포수 방식 개발도 도마 위에

대형 IT 프로젝트 추진 방식에도 문제가 산재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실리콘밸리 `린스타트업 철학`의 창시자 에릭 라이스 말을 인용해 미국 정부의 IT 프로젝트가 톱다운 스타일의 `폭포수(Waterfall)` 방식으로 개발된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폭포수 방식이란 따로 나뉘어 동시에 개발된 여러 프로그램 조각을 최종 단계에서 한꺼번에 통합하는 프로젝트 추진 기법을 일컫는다. 크고 상세한 청사진을 그린 후 완결 시점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추구하지만 개발 초기에 발생한 문제가 마무리 통합 단계에서야 발견된다는 단점이 있다. 개발 기간이 길면 되돌리기도 어렵다. 조금씩 개발하면서 테스트와 수정을 병행하는 `애자일(Agile)` 방식과 대조된다. 우리나라 많은 기관과 기업도 아직 폭포수 방식을 쓴다.

구매 과정의 문제도 속출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닷컴 대표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정부는 IT업체가 함께 일하기 너무 어려운 상대”라며 “비상 상황에서 구매 업무는 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복잡하고 오래된 규제와 지나치게 많은 요구 사항 등이 문제로 부상했다.

구매가 모든 실패의 출발점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너무 적은 수의 내부 인력이 대규모 IT 계약을 처리한다”며 한정된 구매 인력과 제한된 공급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공공 IT 구매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 건강보험 거래소 웹사이트 개발의 주요 문제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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