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투자 활발한 중국...불합리한 `갑` 행세에 한국 기업 고심

이웃나라 중국이 디스플레이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부품 업계에는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막무가내 식으로 가격을 깎거나 노골적으로 기술 전수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해 장비·부품 업체들의 고민도 그만큼 커졌다.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고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장비·부품 업체들이 국내와는 판이한 협력사 관리 관행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가장 흔한 사례는 무리한 가격 인하 요구다. 최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에 장비를 공급한 A사는 협상 과정에서 황당한 요구를 들었다. 구매사가 가격 인하를 요구할 때는 경쟁사와 비교하는 등 근거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은 A사에 가격의 근거가 되는 원가 정보를 요구했다.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무조건 두 자릿수 이상 할인율을 적용할 것이라는 식이었다. A사는 한국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중국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맺었다.

A사 사장은 “중국 업체들이 앞으로도 계속 막대하게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선점을 욕심내다 보면 정보만 뺏기고 기대했던 양만큼 판매하지도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초기 시장이라고 중국을 쉽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고 말했다.

중국 특유의 문화도 무시할 수 없다. `관시(關係)`를 중요시하는 관행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A사도 구매·제품 담당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해당 업무 담당자는 물론이고 회사 내부와 외부까지 폭넓은 관시를 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어렵사리 고객을 확보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결제 기일을 마음대로 늘리는 사례도 있다. 처음에는 3개월 결제를 했다가 6개월, 1년이나 심지어는 무한대로 기일을 늦추기도 한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기일을 무한대로 늘리면 결국 납품 대금을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며 “중국에서는 어차피 널리고 널린 게 협력사라는 인식이 강해 협력사를 존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비건 부품이건 기술 이전 요구도 노골적이다. 중국 업체에 필름을 공급해 B사는 최근 중국 패널 업체 요구 때문에 가공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필름 담당이 중국 LCD 업체의 자회사로 이관되면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필름 공급이 가공 기술이 떨어지는 자회사를 거치면서 멀쩡한 A급 필름이 불량으로 변하기 부지기수였다. 잘못은 전적으로 해당 중국 회사에 있었지만 불량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통에 결국 B사가 중국 회사 직원들에게 기술교육을 해야 했다.

11월 점등식을 앞둔 BOE의 5.5세대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라인에서도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업계는 이 라인에서 시험 생산을 해서 제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장비 업체들이 장비 작동 방식에 대한 교육은 물론이고 생산기술까지 이전해야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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