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소모적인 국감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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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길을 걷는 한국인을 보면 한결 같이 굳은 얼굴이라는 것이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외국인과는 달리 화난 사람처럼 보여 말 걸기도 어렵다고 한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우리 사회에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버럭` 증후군이 만연했다.

국정감사 시즌인 요즘 버럭 증후군을 자주 목격한다. `한 번 걸리기만 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하다. 피감기관이나 민간기업 증인은 물론이고 의견을 달리하는 다른 당 소속의원도 피해갈 수 없다.

올해 국감은 새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 외로 싱겁게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게다가 올해는 20일 동안 16개 국회 상임위가 630개에 이르는 기관을 들여다봐야 한다. 휴일을 제외하면 상임위 한 곳이 15일 동안 50개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시작 전부터 수박 겉핥기 국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사흘 지난 국감을 보니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피감기관 관계자나 기업인 증인 앞에서 고압적인 자세는 여전했다. 매번 반복해 온 호통·막말·추궁 국감 모습도 변하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증인채택 관련 의견차로 허비해 버린 16일 기획재정위원회 국감만 봐도 그렇다. 원하는 증인은 다 부르자는 야당과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은 안 된다는 여당의 충돌은 국감장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 됐다. 한 시간 이상 파행이 거듭되자 국감의 정의를 점잖게 설명하는 의원이 하나 둘 나오고 비로소 본격적인 국감이 시작하나 했더니 점심시간이 돼 중단됐다. 지난 월요일에는 국감이 자정을 넘기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전초전은 이제 생략해도 될 때가 됐다.

지난 15일에는 40여명의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돼 국감장에 불려 나갔다. 이 가운데는 몇 시간 대기하다가 단 1분 답하고 돌아온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이번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200명에 이른다.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경기 때문에 바쁜 기업인이다. 몇 시간씩 기다리게 했다가 부실한 질의응답으로 끝낼 거면 왜 부르느냐는 것이다. 기업인에게 하루는 천금 같은 시간이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증인 채택은 편의와 고압적인 국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위원회 국감장으로 기억한다. 한 의원이 사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시나리오를 어눌하게 읽어 내려갔다. 장관의 대답이 시나리오와 다르게 나오자 원하는 단답형 답(예, 아니오)으로 유도하고 다음 질문으로 이어가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소중한 시간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 건`을 노리는 자세도 여전하다. 충분한 정책 연구나 공부 없이 해당 부처에 자료만 과다하게 요구하는 의원실이 허다하다. 많게는 사과박스 몇 개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 들여다보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서면으로 대체하는 질문은 제대로 답변을 받아 처리하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피감기관도 그렇다. 잘못된 지적에도 괘씸죄에 걸릴 것을 우려해 반박하지 않는 예도 있다. 어쩌면 모르쇠로 일관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만을 속으로 되뇔지도 모른다. 이런 소모적인 국감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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