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런던 마라톤에 참가한 선수 중 유난히 많은 박수를 받은 이가 있다. 32세의 그녀 이름은 클레어 로마스. 2007년 승마사고로 하지마비 판정을 받은 후, 보행보조 로봇을 착용하고 기어이 결승점을 통과한 것이다. 클레어가 착용한 로봇은 이스라엘 아르고 사가 제작한 `리워크`. 미국 엑소, 일본 할과 함께 현재 가장 상용화에 근접한 보행보조 로봇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모두 `바이오닉스(bionics)` 과학이 이룬 성과다. 바이오닉스는 1958년 미 공군의 예비역 대령 잭 스틸이 만든 신조어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뜻한다. 당장 세계 의수·의족 시장만 오는 2015년이면 20조원. 바이오닉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운 이유다.
◇바이오닉스, 기적을 이루다
국내 최고 수준의 바이오닉스 연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의공학연구소 내 `바이오닉스 연구단`에서 이뤄지고 있다. 연구단은 신경신호 측정·분석 및 제어기술을 비롯해 다리운동 재활시스템(코워크), 자폐치료용 로봇(카로), 미세수술용 내시경 로봇(스티들) 등의 개발을 중점 추진 중이다. 이미 스티들과 카로, 코워크 등은 임상 단계와 같은 상용화 직전까지 개발이 진행된 상태다.
로봇 수술, 특히 뇌수술과 같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로봇 수술은 고해상도 영상 가이드 기술과 최적수술 계획 기술, 안전성 향상 기술 등의 개발이 뒷받침돼야 한다. 연구단은 직경 3㎜ 이하로 가늘면서도, 충분한 강성을 가진 능동 조향형 바늘 로봇 기술 등을 현재 서울아산병원 등과 공동 개발 중이다.
또 연구단은 다리운동 재활시스템 개발을 통해 반신마비 환자의 보행보조 로봇 등을 연구하고 있다. 신경이 살아있는 다리의 움직임을 측정, 마비된 다리의 움직임을 보조한다. 특히 재활로봇은 시장성이 뛰어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휠체어 사용 환자 규모가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만큼, 시장규모 역시 최소 약 10억달러에서 최대 500억달러로 예상된다. 이 밖에 자폐아의 동작이나 음성 등을 생체신호를 감지, 환자의 상황을 분석하고 이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치료·진단이 가능한 `카로`의 개발 역시 임상 치료단계까지 올라와 있다.
◇강원래도 우뚝 설 그날을 위해
가수 강원래와 같이 척수 손상이나 신경계 질환을 가진 마비환자의 운동기능을 복구하기 위해 연구단은 다공성 고분자 신경전극 및 커프 신경전극을 이용한 인공신경 네트워킹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러한 인공신경 네트워킹 시스템은 척수나 말초 신경으로부터 신경신호를 검출할 수 있는 증폭기, 신경이나 근육에 대하여 신경신호나 근전도를 유발시킬 수 있는 자극기, 검출된 신경신호를 바탕으로 운동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피드백 제어기로 구성된다. 완전 이식이 가능하도록 무선 데이터 통신 및 무선 전력 전송 시스템을 포함한다. 이미 동물실험을 통해 쥐의 좌골신경으로부터 신경신호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행주기를 검출해냈다. 정강이와 종아리신경에 기능적 전기자극을 줘, 다리관절의 운동을 제어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구가 진행된 상태다.
파킨슨병이나 간질 등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의 치료를 위한 연구로는 뇌심부 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을 통한 치료술과 다양한 뇌 연구에 활용 가능한 멤스(MEMS) 기술 기반의 다기능 신경탐침술도 개발이 한창이다.
폴리머를 이용해 100μm 내외의 폭에 수㎜의 길이의 초정밀 탐침으로 제작된다. 전기 자극을 주거나 신호를 획득할 수 있는 수십μm 크기의 전극과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 채널구조, 광유전학에 기반해 빛을 전달할 수 있는 광파이버(optical fiber) 또는 광도파로(optical waveguide)가 집적돼 있다. 연구단 내 신경인터페이스팀을 이끌고 있는 서준교 박사는 “신경 세포를 뇌에 주입하는 치료법이 갖는 치명적 단점인 낮은 세포 생존율 문제를 이같은 연구를 통해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