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첨단소재 소비 시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소재 강국인 일본계 업체들이 최근 속속 한국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시장 성장과 함께 국내 업계가 첨단소재를 하나둘 직접 개발해 경쟁에 뛰어들고 대기업들도 소재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데 따른 위기감도 엿보인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한국후루야메탈, 한국나믹스, 후지쿠라컴퍼지트코리아 등 국내에 새로 지사를 설립한 일본 소재업체가 대폭 늘었다.
나믹스는 반도체 후공정의 패키지 본딩에 쓰이는 보호소재 전문업체로 솔더볼·플립칩 등을 기판에 실장할 때 쓰는 `언더필(Underfill)` 세계 시장 1위 업체다. 한국에서는 대리점을 통해 영업하다가 지난 2011년 지사를 설립하고 최근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후루야메탈은 플라티나(Pt) 계열 금속소재 전문업체로 터치스크린패널(TSP) 등에 쓰이는 타깃, 발광다이오드(LED) 원료 제작에 쓰이는 도가니 소재 등을 만든다. 지난 2011년 한국에 지사를 세우고 전자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후지쿠라는 차량용 경량화 소재나 전자제품에 쓰이는 특수고무, 반도체장비용 부품 등이 전문 분야다. 지난해 지사를 열고 한국 영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대기업이 제조를 위해 한국에 진출한 뒤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전문 분야 강소 중견·중소기업이 우리나라에 적극 뛰어든 사례는 많지 않았다. 이들이 한국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자·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산업 경쟁력이 탁월해 보다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좀 더 거리를 좁히겠다는 것이다.
한국나믹스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고객사가 찾아와서 제품을 파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고객사를 발굴하고 먼저 제안하는 쪽으로 전략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소재산업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한국 시장 내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도 있다. 편광판, 인듐주석산화물(ITO) 필름, 반도체 감광재(포토레지스터), 타깃, 특수 레진 등은 일본이 장악한 시장이었지만 최근 몇 년간 국산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 한 일본계 지사장은 “소재마저 한국에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일본 대기업의 한국 투자 붐과도 무관하지 않다. TOK는 최근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R&D센터와 제조시설을 짓는 등 한국 사업을 확대했다. 도레이의 국내 자회사인 도레이첨단소재, 스미토모화학 자회사인 동우화인켐도 각각 경북 구미와 전북 새만금단지, 경기 평택에 공장 투자를 대폭 늘렸다.
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일본 첨단소재 업계와 국내 업체 간 합작사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