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윤석 대한전선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대한전선의 오너 경영 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한전선은 지난 1955년 설립돼 한국 전선 업계의 맏형 격이지만 2000년대 들어 무분별한 투자에 따른 경영 악화로 지난 수년간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오너가 자진 퇴진하는 배수진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회사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다.
대한전선(대표 강희전)은 오너인 설윤석 사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사장직에서도 물러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설 사장은 창업자인 고(故) 설경동 회장의 손자이자 고 설원량 회장의 장남이고 대한전선의 최대주주다. 대한전선 측은 “최근 구조조정 막바지에 이르러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안을 협의하면서 자신의 경영권이 회사 정상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설 사장은 지난 2004년 선친인 설원량 회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한 뒤 대한전선에 입사해 경영기획실, 구조조정추진본부 등을 거쳤다. 2004년 이후 대한전선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리조트 사업 등에 무분별하게 투자를 하면서 부실화되자 2009년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해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전선 업계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졌고 비영업용 자산은 매각할수록 손실 규모가 커졌다.
설 사장은 대한전선 지분 1.54%, 대한전선 최대주주인 대한광통신 지분 4.0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하면 18.49%다. 지분 대부분은 채권단에 담보로 설정돼 있어 당분간 다시 경영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설 사장은 직원들에게 “경영상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나머지 현 경영 체제는 그대로 유지돼 사업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의 경영권 포기가 발표되면서 이 회사 주가는 7일 2555원에서 상한가에 근접한 2790원까지 뛰었다. 증권 시장에서는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회사가 정상화되는 수순으로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설 사장의 사임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핵심 자회사는 이미 매각했고, 전선 업계가 반등할만한 호재도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선업계 한 전문가는 “오너 사임도 직접 내린 결단인지 채권단의 압박이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며 “업계 전반적으로 시황이 나빠 경영권 변화에 따른 의미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7월 국내 1세대 전선 업체인 한국전선이 최종 부도처리 되는 등 전선 업계는 불황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출혈 경쟁을 벌여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진데다 최대 수요처인 건설 시장도 세계적으로 불황이라 수요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