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학물질 규제 수위 여전히 높다

여당과 정부가 화학물질 규제 수위를 낮춘다. 연구개발(R&D)용에 한해 화학물질 등록을 면제한다. 등록절차도 간소화해 기업 부담도 덜어준다. 기업 생존까지 위협하는 규제에 대한 산업계 반발을 수용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규제 수위가 여전히 높다. 산업계 판단이다.

당정은 유출 사고 발생 시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내야 하는 규정을 고수했다. 석유화학업체의 영업이익률은 3%대다. 매출액은 수십조 원대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영업이익의 최대 10배까지 과징금을 낼 가능성도 있다. 유출사고로 자칫 기업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산업계 주장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당정은 R&D용 화학물질 등록을 면제함으로써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에서 물러섰다. 그러나 소량 화학물질에 대해선 등록 절차만 간소화했다. 영업비밀 침해 논란이 지속할 수밖에 없다.

당정은 정부는 징벌보다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출사고를 낸다고 무조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며 책임이 중한,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부과하겠다는 밝혔다. 이러한 입법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인명사고를 낼 정도로 화학물질 관리가 허술한 기업이라면 문을 닫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가 결정하는 징벌을 앞세워 기업 관리를 유도하겠다는 발상은 또 다른 문제다.

징벌보다 사고 예방이 목적이라면 이런 징벌 규제보다 화학물질 처리 관련 규정을 제대로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 특정 화학물질을 처리할 때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 하며, 필요 설비 규격과 같은 규정이다.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사고가 발생할 기업엔 당연히 민사 소송 등 배상 책임이 따르게 된다. 막대한 배상금으로 심지어 문을 닫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 이렇다면 기업들도 시키지 않아도 절차를 밟는다. 이것이 시장 원리다.

산업계 반발엔 과도한 규제뿐만 아니라 정부가 이러한 근원적 해법을 찾아보지 않고 규제만으로 해결하려는 행정 편의주의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다. 징벌적 규제란 결국 사전 예방이 아닌 사후 수습책일 뿐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