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이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하고 소재전문 기업으로 거듭난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것처럼 그룹 내 소재 사업 역량을 키우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제일모직은 23일 이사회를 열고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1조500억원에 양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1954년부터 59년간 `제일모직`의 상징으로 자리했던 직물과 패션 사업은 품을 떠나게 됐다. 제일모직은 주주총회 등을 거쳐 오는 12월 1일자로 패션사업 자산과 인력을 모두 이관할 예정이다. 창립 60주년을 맞는 내년부터 제일모직은 현재 주력이자 신수종사업인 소재 사업에만 집중하게 된다.
제일모직이 소재 사업에 진출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직물사업 위주에서 1980년대에는 패션사업, 1990년대에는 케미칼 사업에 진출했다. 2000년부터는 전자재료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 왔다. 케미칼과 전자재료 사업을 합친 소재 사업 매출은 이미 전체의 70%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 및 전자 계열사에 공급하는 전자재료 사업은 최근 고속 성장했다.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양도는 소재 사업 강화를 위한 재원을 마련함과 동시에 그룹 내 소재 사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제일모직은 양도를 통해 확보한 1조여원을 전자재료를 비롯한 소재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제일모직은 이질적인 패션사업을 떼어냄으로써 삼성의 대표 소재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됐다.
삼성은 그동안 그룹 전체 동력을 활용해 소재 사업을 육성해왔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말 삼성 계열사 사장들과 오찬을 하며 소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제일모직이 글로벌 초일류 소재기업을 목표로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기 시작한 때와도 맞물리는 시점이다.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지난 8월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원천기술 업체인 독일 노발레드를 인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 그룹 소재 사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전자소재연구소도 제일모직이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 입주를 시작한 전자소재연구소는 연내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종우 제일모직 사장은 “이번 패션사업 양도 결정은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핵심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차세대 소재의 연구개발과 생산기술의 시너지를 획기적으로 높여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