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2-창조, 현장에서 찾다]콘텐츠 산업의 보고 파주 출판단지를 가다

아침이 되면 작업복과 넥타이 차림이 뒤섞여 바쁘게 컨테이너 같은 공장과 빌딩으로 발길을 옮긴다. 일과시간에는 거대한 화물차가 물류를 실어 이동하느라 분주하다.

Photo Image
파주출판도시 내 책방거리

점심에도 대부분 회사 내에서 식사를 해결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주말과 밤이면 인적이 드문 어둠의 도시다. 아이들이나 애완동물도 없다. 우리나라 산업단지공단의 전형적 모습이다.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이루고자 형성된 도시로 전국에 1009개가 있다. 원활한 물류가 목적인 널찍한 차선과 반듯한 건물이 생산성과 효율화의 상징으로 칭송받았다. 이런 산업단지공단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산업의 부가가치가 제조업에서 지식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고령화로 젊은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이런 변화의 바람과 함께 파주출판도시가 미래형 산업단지의 새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9월 초 기자가 찾은 파주출판도시는 완연한 가을 색으로 뒤덮였다. 한낮의 태양 아래 기와집 옆에 세워진 대나무가 시원한 바람소리를 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책방거리를 찾는 사람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건물 곳곳 1층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는 토론을 하거나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이 보인다.

거리 주변의 건물은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다. 어느 건물 하나 똑같이 생긴 건물을 찾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건물마다 색깔 톤이 일정해 도시 전체가 깔끔하다.

입주기업을 알리는 간판도 서로 모나지 않으면서 아름답다. 마치 유럽 중서부 작은 소도시에 온 느낌이다. 애초에 산업단지공단이라는 생각을 품고 온 기자에게는 의외의 모습이다.

이상 파주북소리 사무총장은 “주중에는 출판사나 인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아침저녁 거리만 붐비지만 주말에는 책을 읽고 사는 사람, 연극과 콘서트 등 문화공연을 찾는 사람까지 다양한 인파로 북적인다”고 전했다.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 `파주출판도시`

지난 8월 매주 토요일에는 `한여름 밤의 북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클래식 전문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클래식 콘서트가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렸다. 이달부터는 LED를 이용해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조명하는 `파주 빛 축제`가 다음달 6일까지 개최된다.

축제도 다양하다. 봄에는 `파주 어린이 책 축제`가 열리고 여름에는 `파주 북 소리 축제`가 열린다. 석학의 강연과 세미나는 물론이고 벼룩시장까지, 그야말로 문화의 도시다.

건물마다 독특한 모습을 한 배경을 묻자 이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고 말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대 가치로 꼽는 산업단지에서 굳이 기존 건축비의 갑절이 넘고 효율이 떨어지는 건물을 짓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영세한 출판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입장이었다.

이 사무총장은 “다행히 협동조합방식을 채택한 입주업체 모임은 미래를 책임지는 책을 만드는 기업으로서 책임감과 윤리를 강조했고, 기업은 이런 결정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밝혔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입주 후 10여년이 지난 현재 기업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김광숙 앨리스하우스 대표는 “건축물 형태에 맞게 들과 시내를 가꾸면서 산업단지이자 생태도시 겸 문화도시로 이름을 얻게 됐다”며 “그 덕분에 사람들이 북적여 일하는 맛도 나고 기업 이미지와 부가가치가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산업단지로서 제역할 톡톡

파주에 출판기업이 모이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이 개선된 것도 기업으로서는 매력적이다.

출판, 인쇄, 지류, 유통과 출판인쇄 관련 업체 260여개사가 한 곳에 모이면서 물류비용이 30%가량 절감됐다.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 편집해 바로 옆 인쇄소를 이용해 인쇄와 제본을 하고, 출판물종합유통센터에서 전국 독자에게 공급하는 구조다. 독자는 양질의 책을 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받아보는 원스톱 체제를 갖춘 셈이다. 서로가 양질의 책을 만들려 경쟁하는 것도 독자에게는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준다.

유사 기업 간 모임으로 서로 생각을 나누는 것도 기업이 얻는 시너지다.

김광숙 대표는 “파주출판산업단지라는 이름 아래 300개 가까운 관련 기업이 입주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머리를 맞대 생각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아이디어도 얻곤 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문화가 더해져 사람이 몰리는 것도 서로 모여 이뤄진 결과다.

이 사무총장은 “도시 자체가 건축물만을 가지고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 됐다”며 “건축에 책, 문화공연까지 더해져 경기도와 서울은 물론이고 해외 관광객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교육·이업종 공존해야 사람이 사는 산단 완성

파주출판도시가 여러 산업단지로부터 부러움을 사지만 해결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주거나 업종이 제한된 게 문제다.

이 사무총장은 “거주환경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산업단지 관련법안이 발목을 잡아 늦게까지 일하더라도 잠을 자려면 먼 거주공간으로 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창의인재가 모이도록 교육과 산업의 융합시대에 맞는 다양한 업종 진입도 숙제로 꼽았다.

그는 “산업이 발전하려면 인재가 지속해서 유입돼야 하고 교육·연구개발(R&D)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과거 생산과 효율을 강조하는 산업단지 관련 법률은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모델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 산업단지 형태는 50여년 전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키고자 구상된 것”이라며 “시대가 바뀌었는데 낡은 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주=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