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 7월 국내 주요 대학 공학계열 박사졸업 예정자 155명을 대상으로 졸업한 뒤 희망하는 직장을 조사했다. 이들 가운데 53%는 대학, 37%는 기업으로 취업을 희망했다. 10%만이 창업을 원했다. 반면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조지아공대가 2010년 미 예비 공학박사 42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이들은 기업 47%, 대학 32%, 창업 21%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사업화하려는 의지가 왜 약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에서 역량 있는 젊은이의 기술창업을 독려하기 위해 창업가의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보유 기술의 가치와 아이템의 우수성을 토대로 융자나 신용불량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창업에 나서도록 도와야한다고 지적한다. 창업과 창업 실패의 경험이 재창업과 취업에 있어 훌륭한 자산이 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청년 창업의 걸림돌이 되는 3가지 요소에 대해 짚어보자.
◇받아도 받아도 부족한 창업 자금
전자신문이 전국 59개 대학 87개 동아리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전국학생창업네트워크(SSN)에 의뢰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5%가 창업의 최대 방해요소는 창업자금 부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창업 방해 요소로는 △창업 정보·교육 부족 27% △팀 빌딩 어려움 14% △부모나 주위의 반대 8% 등을 들었다. 시중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창업지원금이 풀리고 있다지만 아직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는 사람은 없는 셈이다. 자금이 하부조직으로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창업지원금을 받기 위해 페이퍼 워크(문서작업)를 하는 시간과 비용으로 은행권 대출을 받겠다고 말하는 대학생도 있었다. 프라이머 데모데이에서 만난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예비창업가는 “대출을 받는 절차와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운데다 지원 자금도 적어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며 “현재 민간 VC를 찾아다니며 타당성을 검토받고 있다”고 밝혔다.
◇재도전 장치가 없다
대학생 창업은 아이디어나 기술에 기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젊은 혈기로 뛰어들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보증이라는 규제의 멍에를 쓰고 출발하는 많은 창업가가 재기 불능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예 창업의 꿈을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게 된다. 그간 정부도 연대보증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연대보증 폐지 정책은 창업자가 아니라 제3자 연대보증에 국한하고 있다”며 “연대보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돼 재기할 기회를 잃기 십상인 시스템 속에서라면 누구도 선뜻 창업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정책 개선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현재 1만 기업인 창업자 연대보증 개선 서명운동을 펼치는 중이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경영에 대해 배울만한 곳이 없다
대학생은 학업에 정진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정보력도 부족하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언제 어디에서 사업을 당장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가장 기초적인 법인 설립이나 계약서 작성하기, 법인세를 내는 사소한 방법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경영학 수업을 들어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의 한계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에 재학 중인 김자인(24)씨는 디자인밖에 몰랐다. 기획, 마케팅에 대해 무지했다. `스타일메이커`를 창업한 후 일년간 매출이 없었다. 결국 마케팅 전문가를 찾아 컨설팅을 받았다. 도메인과 이름, 모든 걸 바꿨다. 김 씨는 “기획, 마케팅 같은 경영 측면이 중요한지 몰랐으며 분기별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조차 복잡하고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영마인드를 갖추고 충분히 교육을 받은 뒤에 창업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주환 SSN 회장은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안전망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창업의 막막함을 없앨 수 있도록 아이디어 단계부터 사업화 단계까지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