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2-창조, 현장에서 찾다]돌담과 바람의 섬 제주, 굴뚝 대신 `창조`를 품다

돌담을 두른 해안마을의 소박한 정서와 숲을 흔드는 자연의 바람,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잘 알려진 한반도의 보물섬. 제주도를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가 천혜의 자연 경관을 바탕으로 제 3의 `창조산업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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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주가 기업형 도시로 부각되지 못했던 것은 국토 남단의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와 관광산업 위주의 지역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경제 키워드가 급부상하면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굴뚝 없는 3차 산업, 이른바 지식산업의 메카로 제주가 재평가받고 있다.

인터넷 등 통신 시설만 갖춰 놓으면 전국 어디서든 업무가 가능한 인프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창조형 산업`에 적합한 지리적 여건까지 갖췄다. 1시간 이상을 출퇴근 시간으로 버려야하는 도시생활이 오히려 지식산업 창출의 약점으로 작용한 탓이다.

미국 IT산업의 집산지인 실리콘밸리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 대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도시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변에 형성된 것도 같은 이유다. 제주가 서서히 IT와 연구형 기업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생산과 물류 기지 이상의 창의적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첫 출발을 끊은 뒤 IT기업들 사이 제주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제주로 본사를 이전한 수도권 기업은 반도체 설계회사 이엠엘에스아이(EMLSI)와 음향기기 제조 키멘슨전자, 의약품 제조업체 한국BMI 등 총 8개 회사다.

백신프로그램 알집을 개발한 이스트소프트와 반값모니터·친환경 PC모니터를 생산하는 모뉴엘 등 5개 회사는 현재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사옥을 짓고 있다. 이 밖에 IT, 생명공학(BT) 기업 20개 업체도 첨단과학기술단지 내에 사무실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명품 국제 자유도시, 홍콩·싱가포르를 넘어

제주가 추진 중인 산업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제조 산업 기반이 아니다. 오히려 경관의 장점을 산업에 융합해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넘어서는 명품 국제 자유도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1999년부터 제주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제주도의 지역적·역사적·인문적 특성과 청정한 환경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관광·휴양도시를 조성하고 원활한 투자유치 환경조성과 신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국제자유도시 추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 차원의 개발전담 및 지원기구로 국토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를 설치해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제주영어교육도시, 휴양형주거단지 조성사업 등 국제자유도시 주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제주도는 헬스케어타운, 첨단과학기술단지, 영어교육도시 등 6대 핵심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다양한 국적의 국제학교가 모여 있는 영어교육도시, 첨단 IT·BT 기업이 들어선 첨단과학기술단지, 국제자유도시의 메디컬 인프라이자 의료관광사업의 견인차 역할을 해나갈 헬스케어타운, 제주관광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테마파크와 박물관 사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서의 위상을 하나씩 다져나가고 있다.

다음과 이스트소프트, 모뉴엘 등 첨단 IT기업들이 모여들고 있는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는 창조경제를 이끌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다. 제주시 아라동 일대 다음 커뮤니케이션 본사가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는 한라산 절경이, 뒤로는 입주 기업의 개발공사가 한창인 이질적인 현장이었다.

실제 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91개 기업이 이미 입주를 완료하고 근무 중이다. 이 과학기술단지에는 IT기업뿐만 아니라 바이오, 에너지, 애니메이션 등 미래신사업의 주역 기업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IT·BT 산업이 중요시하는 `창의적인` 작업을 해나가는데 훌륭한 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첨단과학기술단지의 성장이 갖는 의미는, 현재 3차 산업에 편중되어 있는 제주의 산업구조에서 고부가가치의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개편을 주도한다는 데 있다. 차를 돌려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대를 찾았다. 이곳에는 관광과 의료, R&D 등이 연계된 의료복합단지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이다.

◇치료와 치유의 만남, 동남아 최대의 헬스케어타운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이다. 2012년 중국 녹지그룹에서 108만9000㎡의 부지에 약 1조원을 투자해 의료 연구개발(R&D)센터, 휴양문화시설, 숙박시설 등을 갖춘 제주헬스케어타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최근 중국자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JDC는 사업에 참여한 녹지그룹의 경우, 상해시 정부가 승인한 명망 있는 기업이며, 투기자본과 구분해 협력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헬스케어타운 오픈 후 첫 목표는 중국 환자 유치다. 이를 위해선 중증질환보다 피부, 미용성형, 정형외과, 건강검진, 한방 등 다양한 의료기관이 센터에 입주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또 단기 체류 환자도 중장기 체류로 유도하도록 추진할 예정이며, 서귀포지역 주민들의 부족한 의료시설을 보완하는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 제주를 찾는 외국인 가족의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막대한 외화 수익을 벌어들여 한국 R&D 파크 개발에 자본을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속내다.

헬스케어 타운은 외국인 기업의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기업이 제주에 본사를 이전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데 숙박과 의료시설이 전무하다. 치료와 치유의 공간으로 동남아시아의 최첨단 의료 복합 타운(메디컬 사이언스 파크)을 짓는 게 목표다.

◇동북아 교육허브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찾은 국제자유도시의 방점을 찍을 제주영어교육도시. 방학이라 학생은 없지만,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방문한 학부모와 학생으로 시끌벅적하다. 정부와 JDC는 지난 2008년부터 서귀포시 대정읍 일원 379만2000㎡ 부지에 1조7810억원을 투입, 2015년까지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중심지로 동북아 교육허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현재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NLCS 제주 캠퍼스가 2011년에 문을 열었다. 캐나다 브랭섬홀 제주 캠퍼스가 2012년 10월에 개교해 운영 중이다. 미국의 명문학교인 세인트 존스 베리 아카데미가 2015년 개교 예정이며 해외 유명대학 유치 활동도 병행해 나갈 예정이다. JDC는 영어국제학교가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해외유학과 연수로 유출되는 약 5억달러 내외의 외화 유출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교육비 부담 완화와 조기유학 문제 등 한국의 만연한 사교육 폐해도 이 제주영어교육도시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포부다. 영어교육도시의 생산유발 효과는 약 2조원에 달한다. 조성사업 기간 중 고용유발효과 또한 2만여명으로 추산되며, 제주 출신 고급인재의 재유입과 고급 인력의 일자리 창출 등 고급인재 양성소 역할이 기대된다.

제주 국제자유도시의 비전은 `교류와 비즈니스 경계가 없고 무한한 만족과 즐거움을 얻는 곳, 제주`다. 관광은 물론 교육, 의료, 첨단 지식 산업이 여러 톱니바퀴로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신 경제 특구를 지향한다. 유배와 절망의 땅 제주. 굴뚝 없는 새로운 지식산업의 메카로 동남아시아 최고의 명품 국제자유도시를 향한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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