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 로봇공학도' 이야기 들어보니…

[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황은솔(광운대 1학년)씨는 여성 로봇공학도다. 7살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 손을 잡고 회사를 찾았다. 아버지는 방송국 송출 기술관련 엔지니어다. 방송국에서 커다란 기계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그는 막연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기계 장비를 향한 동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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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방송국을 자주 방문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딸이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보는 것이 즐거웠을 터다. 황 씨는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며 “기회가 닿지 않았지만 기계에 관심은 계속 커졌죠”라고 말했다.

꿈의 대상이 방송장비에서 로봇으로 옮겨간 것은 중학교 때 일이다. 서울 명덕여중에 다니던 그가 3학년이 됐을 때, 방과 후 동아리 활동으로 로봇 동아리가 생겼다. 여자 중학교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기계 관련 동아리 활동이라 처음 개설되자마자 가입서를 제출했다.

같은 해 로봇 관련 대회가 있었지만 참가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고등학교를 올라가서 계속 로봇을 공부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생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황 씨는 아쉬웠다. 친구와 함께 2인 1조로 출전하는 `로봇 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꿈을 접었을 지도 모른다.

대회 참가를 계획하고는 밤샘의 연속이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외부 강사를 찾아가 로봇 설계와 제작 방법 등을 배웠다. 주말도 쉬지 않고 매일 로봇에 매달렸다. 이유를 물으니 황씨는 “재미있어서요”라며 웃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가 떠올린 학교생활의 최고 행복이었다.

참가한 부문은 캐리어 머신이다. 두 로봇이 서로 상대방 짐을 가져와 점수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시간은 3분. 짧은 시간 안에 로봇이 재빨리 움직여 상대방 짐을 정해진 장소로 옮겨야 한다. 준비 단계는 설계부터다. 정해진 맵이 있지만 최단 거리 루트를 계산하고 C언어로 프로그램을 짜야한다.

첫 대회 출전 결과는 어땠을까. 서울 예선 중등부 캐리어부문 장려상. 최우수는 아니지만 전국 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받았다. 친구와 함께한 첫 국내 경기 결과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이다. 동시에 대전에서 개최되는 `국제 로봇올림피아드`에 출전했다. 처음 로봇을 가지고 대회란 곳에 출전해 세계 로봇 영재들과 만나게 됐다. 세계 대회에서 캐리어 머신 부문 장려상에 그쳤지만 그는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함께 로봇 축제를 열었고 그 속에 제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라고 감격했다. 국제 대회 성적을 가지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로봇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다.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황씨의 꿈은 방송 엔지니어가 아닌 로봇과학자가 됐다.

고등학교를 진학했을 때, 그가 가장 좌절한 것은 중학교 때처럼 로봇 동아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문계열이고 여학교이니 만큼 로봇과는 거리가 멀었다. 1학년 때 잠시 다른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로봇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2학년으로 올라가자마자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다 “로봇 동아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젊은 패기에 흔쾌히 허락했고, 황씨는 22명 로봇 동아리 회원을 이끄는 장이 됐다.

로봇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이걸 통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재능기부였다. 로봇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어린 생각이었지만 추진력은 남달랐다.

지역아동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로봇 제작을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냐고. 들려오는 대답은 “우리는 그런 거 안합니다.” 성인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그것도 여학생이 무슨 로봇을 가르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십여 군데 연락을 한 결과 딱 한 곳에서 `한번 해보라`고 허락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라 집중도 못하고 잘 배우지도 못했다. 교육용 로봇키트를 사용한 로봇 제작이었지만 조립부터 엉망이었다. 역시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특히 고등학생이 처음으로 남을 가르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달라졌다. 점차 흥미를 가지면서 집중했다. 나중에는 스스로 창작물도 번듯하게 만들어 보였다. 중학교 때는 스스로 로봇을 만들고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그러나 남을 가르치면서 좋아하는 것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 로봇 재능기부로 보람을 얻은 것이 고등학생 시절 가장 좋은 기억이었다.

친구들 모두 인문계열이다 보니 대학 진학을 위해 수학능력시험 공부가 한창이다. 그러나 황씨는 로봇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특히 재능 기부로 배운 것이 있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로봇`을 만든다는 목표가 생겼다. 황씨 아버지가 딸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딸 아이가 원하는 로봇 공학. 그것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황씨는 지금의 대학생활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광운대학교 로봇특기자 전형으로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고 국내 1호 로봇게임단 `로빗`에서 활동하는 대학생활. 그가 선택한 길이다.

황씨는 현재 로봇 기초 이론을 배우며 대학에 다니고 있다. 로봇이라도 기초 과학인 수학·물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C프로그래밍도 좀 더 공부해야한다. 시간 날 때마다 게임단에서 국제로봇콘테스트를 준비한다.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있죠. 몸이 불편한 분들입니다. 언젠가는 그 분들을 위한 로봇을 만들고 싶어요. 직접 할 수 없는 일을 로봇이 돕는 거죠.” 어려운 사람에게 힘이 되는 로봇을 만드는 것. 수년 동안 한우물만 판 한 여성로봇공학도의 이야기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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