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창조, 사람에게 묻다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다`란 속담이 있다. 창조경제란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창의성을 경제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자마자 온 세상이 `창조경제 만능주의`에 빠졌다. 각 부처에서 사업계획서를 받을 때 창조경제로 시작하지 않는 보고서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정책 방향은 창조경제 일색이었다. 국민은 조금씩 창조경제에 지쳐가고 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는 “특정 정책 개념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면 모두가 피곤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회적 기업`이란 개념에 주무 부처가 뛰어들어 일자리와 복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이 대표는 창조경제도 비슷한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대위원 시절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소속으로 청년의 입장에서 창의산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던 그다. 그러나 지금 창조경제를 보면 난감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창조경제 수단은 과학기술과 ICT뿐인가”= 미래 사회에서 창조경제란 거대 담론이 경제 성장을 이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이란 것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산업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ICT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창조경제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그러나 방법론으로 제시된 `과학기술과 ICT의 융합`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버드대 1학년일 때, 페이스북이 학내서비스로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아무도 페이스북을 기술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필요로 했고 거기에 맞춰 서비스가 시작됐죠. 페이스북 개발팀에는 전산 개발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회학도, 경제학도, 역사학도도 있었죠. 우리나라에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페이스북은 단순 ICT 네트워크·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 관계망이고 인문학적 바탕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떨까. “과학기술과 ICT만이 창조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보려면 창업 모임에서 필요 인력을 구하는 모습을 보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 그는 모든 창업이 이 세가지 직종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에 `우리나라에서 페이스북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다. 이 대표는 “개발이라는 기술적 프레임에 갇혀서는 제대로 된 독창성을 가질 수 없다”며 “과학기술·ICT란 좁은 범위에서 창조경제를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ICT 창조경제, 디지털 정보격차 먼저 풀어야”= 창조경제의 정의를 다시 보자. 최종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다. 현 정권에서는 그 방법으로 창업을 제시했다. 젊은 인재의 창업과 기업가 정신이 요구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ICT 융복합과 창업이 과연 일자리 창출의 절대 명제가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이 대표는 “ICT 창업이 청년 일자리 해결 대책이 될 수 없다”며 “ICT 기술은 사람을 기계로 대체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서점이 열풍이다. 사람들은 저렴하고 편리하게 책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표는 이 때 `사라진 동네 서점`에 주목해보라고 주문했다. ICT는 편리라는 장점과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란 단점을 가진 양날의 검이다. 지금까지 창조경제 아이템은 사람을 대체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 닷컴 버블이 일어났을 때 고소득층을 중심 ICT 경제를 만들어냈다”면서도 “그러나 ICT에 적응하지 못한 세대는 이를 증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 압축적으로 이뤄지면서 일어난 문제점도 비슷하다. 경제 민주화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압축성장의 수혜자인 대기업이 지탄의 대상이 됐다. ICT가 우리나라 경제 동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지금, ICT 경제민주화란 말이 서서히 수면에서 올라오고 있다. 이 대표는 “정부가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소하지 못하는 창조경제 속에서는 ICT 기업이 `마피아`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조급증에 빠진 창조경제 `아이콘을 만들지 말라`= 8000만원. 이 대표가 인터뷰 중 가장 자주 언급한 돈의 액수다. 그는 이 8000만원이 창업을, 나아가 창조경제를 망친다고 말했다. 바로 정부와 지자체가 너도나도 내세우는 창업지원금이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창업이 열풍입니다. 웬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창업에 뛰어들려고 하죠. 창업 성과는 아니지만 창업 시작은 이미 `버블` 단계입니다. 창업 제안서나 기획서를 보면 모두 소셜 커머스 일색인데 정부에서는 쉽게 창업지원금을 내주죠. 젊은이들에게 이미 창업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획서를 잘 쓰면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다. 자금은 정부에서 받는다. 잘되면 다행이지만 과연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예비 창업자가 쉽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수백개 아이디어가 두 달 안에 망하고, 다시 수백개의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며 “실제 성공적인 성과를 내는 창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한다. 창업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조급증에 빠진 정부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창조경제 조급증은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모두 창조경제 신봉자들이 내세우는 `아이콘`이다. ICT 창업의 신화로 읽히는 이들을 보고 많은 젊은이들이 카페에 노트북을 열고 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대표는 여기서 `허세`를 읽었다.
“창조경제 아이콘으로 감성을 팔아서 창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청년이 여기에 빠지죠. 허세가 낀 거품 보다는 치열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자금 지원이라는 진통제를 놓기 보다는 헝그리하게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창업에 뛰어든다면 망하기도 쉽죠.”
`시작 보다 성과 단계에 집중하자.` 이 대표가 제시한 정부의 창업 정책 방향이다. 너무 쉬운 창업을 장려하지 말고, 성과를 만들어 냈을 때 성공을 바라보고 창업할 수 있게 해야 망하지 않는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지론이다. 그는 “시드 머니단계보다 인수합병(M&A) 단계에서 투자 혜택을 늘려주는 것, 창업자 자부담을 늘려 좀 더 치열하게 만드는 것”을 방법으로 제시했다. 이 대표는 “경쟁을 즐기고 밤새우며 하는 창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창업”이라고 말을 맺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