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여성이공계 후배들에게
저는 중고교 시절부터 수학과 영어 과목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동시에 현대건축물에 많은 관심이 있었죠. 미적인 우수성 외에 독창성, 편리성 등이 반영된 주거공간을 설계하는 일에 종사하기 원했습니다. 당시는 여성 건축학도의 취업이 용이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제 부모님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능한 전공분야를 선택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결국 저는 평소에 좋아하던 모든 `학문의 쌀`인 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할 당시, 학과 학생 수는 전체 40명, 여학생이 6명으로 여성비율이 약 15% 수준이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교적 여성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학 4년 간 중·고교 시절에 미뤄뒀던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모두 해보기로 했습니다. 특히, 건축학에 미련이 남아 미술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미국 유학을 위해 영어회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더 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를 배우기 위해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공과목인 수학공부와 학점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대학생활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대학시절에 다양한 직업현장, 특히 산업체를 방문해 보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생생한 체험담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하는 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더라면 보다 구체적 직업관을 일찍이 수립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학과가 속해있는 이과대학 건물은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교시 수업시간에 맞춰 길고 긴 백양로를 달리며 숨이 턱에 차서 `백양로가 무빙웨이(moving way)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누군가 백양로에 무빙웨이를 깔아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우리가 후배를 위해 무빙웨이를 깔아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 유학을 꿈꿔 왔습니다. 그 이유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경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유학 중이던 의학도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과 장래를 걱정하며 쓴 어느 일간지에 게재된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국가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여성공학도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한 순수수학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경쟁력 기반 구축에 필요한 응용분야에서 첨단 지식을 습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교시절부터 키워온,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희미해져 가던 미국 유학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먼저 미국 오스틴에 소재한 텍사스대학교 수학과에서 응용통계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동부에 위치한 한 때 철강산업으로 명성을 날리던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로 옮겨 산업공학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여성공학도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산업공학과 박사과정에 여학생이라고는 IBM에서 근무하다 휴직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제인이라는 이름의 백인과 저, 이렇게 두 명 뿐이었습니다. 제인과 저는 오퍼레이션 리서치(Operations Research)라는 동일 분야를 전공하게 돼 우리 둘은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인은 IBM에서 상당기간의 근무경험을 통해 기업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적 지식을 어떻게 기업에 적용시킬 것인가 등 사고의 범위가 저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제인은 IBM에 근무하기 이전에 교과 과정상 필수과목인 인턴십 과정을 통해 기업근무에 필요한 기초지식과 필수지식을 사전에 습득해 입사 초기에도 프로젝트 수행이 용이했다고 자랑하곤 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순수수학을 전공해 이론에서는 제가 월등했던 반면 기업현장의 응용능력이 요구되는 케이스스터디 등에서는 제인이 월등한 성과를 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는 매년 대학원 전교생을 대상으로 포스터 연구경쟁대회를 개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 마지막 해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마음에서 본 대회에 출전하여 아쉽긴 하지만 2등에 입상하는 신나는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넓은 미래에 한껏 도전해보세요. 여러분들 모두를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넓으니까요.
정경희 포스코경영연구소 기술경영시너지반장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www.wiset.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