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법학, 의학까지 애써 연구를 마쳤으나 그 결과는 가엾은 바보 꼴이라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부했으나 책상에서 배운 관념이 파편으로 전락해 도처에 산재하네. 수많은 이론과 사유체계를 요리조리 논리를 따지면서 배웠으나 현실의 벽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구나. 머릿속 지식은 이렇구나!”
이 같은 한탄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교실에서 나와 현실로 들어가 보니 이제껏 심혈을 기울여 갈고닦은 관념이 지식을 만드는 개념으로 쓰이지 못하고 푸념으로 나뒹굴고 있더라는 통렬한 반성이다. 오호 통재라! 이제부터라도 남의 관념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지 말고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고 해도 내 신념을 추가해 나만의 철학과 열정과 혼이 담긴 개념을 만들어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과 마주치면서 처절하게 닦아야 하리.
책상은 일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격동의 현실과 거리가 먼 창백한 교실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고 고민이 고민으로 계속된다면 공허한 생각과 골치 아픈 고민만 머리에 남는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믿음은 오로지 생각대로 행동해보고 실천에 옮겨 보는 과정을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모든 지식은 그 지식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맥락과 나름의 사연 그리고 배경이 있다. 지식이 관념의 파편으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있는 지식으로 체화되기 위해서는 그 지식이 탄생한 사연과 배경을 이해하고 직접 실천해봐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실천적 지혜라고 불렀다. 어떤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지식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관여된 다양한 변수들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육감적으로 체득된 지혜다. 열정과 정열이 추가되지 않은 지식은 지루한 한 끼의 사식에 불과하다. 뜨거운 용기가 서릿발처럼 서려 있는 지식만이 세상을 구원하고 위기에서 나를 구원할 것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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