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스티브 발머 은퇴가 주는 값비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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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세계 기술산업계 눈길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다. 2000년 빌 게이츠 회장의 은퇴 이후 마이크로소프(MS)를 이끈 그가 은퇴할 뜻을 밝혔다. 드디어 MS 1세대가 작별을 알렸다.

그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한 줄로 요약하면 그는 매출과 순익이라는 경영 활동엔 A+ 받았지만 기술기업 본연의 혁신엔 낙제점을 겨우 면했다. 재무 등 안살림을 챙기며 빌 게이츠를 도왔던 그에게는 취임할 때부터 예고됐던 평가다. 평가에 13년이나 걸린 이유는 하나다. 의심 받던 MS 기술 혁신 역량이 모바일 시대에 들어서자 비로소 드러났다.

발머는 후회하는 경영 실수로 `윈도 비스타`를 꼽았다. 2003년 나온 윈도 운용체계(OS)다. 디자인과 기능 개선에도 불구하고 낮은 편의성과 호환성으로 실패했다. 사용자 이탈과 기업 이미지 추락을 불러왔다. 그 악영향이 지금도 남았다. 좋은 경영 실적으로 `빌 게이츠 대타`란 부담감을 이긴 발머로선 두고두고 아쉬운 실수다.

그러나 진짜 실수는 비스타가 아니다. 이를 만들어 낼 기술진을 홀대한 것이다. 그는 핵심 경영 라인에서 엔지니어를 배제하고 MBA 출신을 중용했다. 수많은 엔지니어가 구글 등 다른 혁신 기술기업으로 옮겨갔다. 그 부메랑이 2000년 말 모바일 시대 도래와 함께 왔다.

기술기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주주보다 기술자로부터 박수를 많이 받아야 살아남는다. 그래야 기업 가치도 떨어지지 않아 주주에게 이익이다. 늘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현재보다 미래 가치가 우선인 기술기업의 특성이다.

MS는 어느덧 기술기업으로서 존재감을 잃었다. 새 OS를 내놓아도 경쟁사는커녕 새 스마트폰보다 못한 관심을 받는다. 그러니 기업 가치가 경영 실적과 거꾸로 갔다. 지난 2분기 구글의 주당 순익은 9.56 달러지만 MS는 고작 66센트다. 한 때 최대 시가총액을 자랑했던 기업의 현주소다. 발머 시대가 오래 간 것도 주주들이 낮은 주식가치 원인을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MS가 기술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파티를 다시 열 수 있지만 과거처럼 손님으로 북적거리긴 글렀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 CEO 후보로 거론되는 임원들도 경영, 재무, 마케팅 등 전문 업무엔 정통하지만 기술 비전과 추진력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와 달리 2인자를 제대로 키우지 않았다.

MS는 여전히 데스크톱 기반 기업 시장을 독점한다. 검색부터 게임까지 OS 외에도 다양한 요소 기술과 서비스도 있다. 그런데 이 역량을 모바일 시대 선점이 아닌 경쟁사 발목잡기에만 썼다. 이 어두운 과거와 완전히 단절해야 MS가 제 위상을 되찾는다.

역시 OS가 시험대다. 모바일시대 사용자 편의에 맞지 않는 무거운 시스템을 버릴 정도까지 간다면 희망이 보인다. 적어도 올 가을 등장할 애플의 새 OS와 경쟁할 정도로 데스크톱과 모바일을 넘나드는 OS를 빨리 내놓아야 한다.

플랫폼의 힘은 모바일 시대에도 이어진다. 가트너 전망에 따르면 애플 OS를 쓴 단말기가 2년 내 윈도 단말기보다 많아진다. MS가 단순 기업 솔루션 업체로 전락할 때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CEO 교체는 이렇게 되지 않으려는 MS로선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다. 시장 기대는 크다. 발머 은퇴 시사 이후 MS 주가가 크게 올랐다.

경영 능력이 뛰어나도 기술 통찰력이 모자라며 2인자를 키우지 않는 CEO가 이끄는 기술기업은 아무리 시장을 독점할지라도 지속 성장할 수 없다. 은퇴 발언으로 주가를 높여 주식 노다지로 건졌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까지 발머가 기술산업계에 주는 메시지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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