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융합연구의 오용과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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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융합연구자는 아마도 뉴턴이 아닐까. 세상만물 이치를 깔끔하게 설명해주는 만유인력 법칙에 비한다면 주식 예측 따위는 한심한 문제로 보였을 것이다. 물리법칙을 경제에 융합시킨 발상은 참신했으나 뉴턴은 경제적으로 쫄딱 망했다. 경제와 물리 융합은 이후 `블랙-숄즈 모형` 등으로 꽃을 피우고 노벨상까지 받는다. 경제물리(econophysics)라는 융합학문은 냉전 종식으로 연구기관에서 퇴출된 물리학자의 자구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융합연구의 성공 예측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결과론적 해석만 가능하다.

교육현장에서 융합교육에 대한 독려가 대단하다. 그런데 걱정거리도 적잖다. 그 중 하나는 현 추세가 단위 연구자의 자발성에 의존하기보다 지원책을 이용한 하향식 유인책이어서 내용과 형식이 따로 논다는 점이다. 선별 과정에서 융합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저것 일단 섞어보자는 식의 접근, 즉 융합보다 단순한 `접합연구`가 융합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융합연구를 특별히 독려하지 않아도 연구자들은 이런 방법론을 잘 알고 있다. DNA의 구조를 X선 회절로 밝힌 것은 융합연구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컴퓨터 기술로 연구하는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은 30년 전 자생한 융합학문이다. 위대한 석학이 융합연구를 발명하지 않았어도 현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크고 작게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 교재에 실린 응용문제는 제시한 주제가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육 과정에서도 융합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본질적인 융합연구가 포장 때문에 외면 받는 반면, 급조되거나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유사융합이나 접합연구가 대우를 더 받기도 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면 현장 질서는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더 큰 문제는 교육에 있다. 커리큘럼에 새로운 과목이 들어오면 다른 과목은 밀려나야 한다. 최근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여러 제도 등으로 인해 정규 커리큘럼 간섭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산업 친화적 기술을 강조하다보니 수학이나 통계 같은 기초과목의 강도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융합교육도 좋으나 전통적인 기초 과목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개인 역량으로 해결해야할 덕목이다. 이를 정규 과정에 넣어 일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그것이 추구하는 인문학적 자발성에도 스스로 반하게 된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완성하기 위해 인문학적 상상력, 융합적 발상, 창의성, 꿈과 끼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부추김은 기초를 잘 다져야할 학생에게 헛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다. 현장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이나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지위는 극히 한정돼 있다. 최상위 설계자에게만 중요한 덕목을 모든 참여자가 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설계만 하고 앉아 있다면, 벽돌 쌓고 기둥을 세우는 현장에는 누가 간다는 말인가. 모두 꿈만 꾸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운다는 말인가.

실제 정부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하지만 일선 대학은 인문학과를 없애려고 한다. 왜냐하면 인문 정신만으로 취업시킬 수 있는 자리는 극히 한정이 돼 있기 때문이다.

국외 유명 융합연구팀을 보면 각 분야 탄탄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우리 식으로 융합전문가를 모아서 팀을 짜는 경우는 없다. 하나를 잘해도 이기기 힘든 세상에, 이것저것 조금씩 아는 식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한 때 유행한 짬짜면이 시장에서 버티지 못한 교훈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 요구되는 것은 글로벌 창의인재용 `꿈`과 `끼`가 아니라, `끈기`와 `호기심`이다. 창의성, 통섭적, 인문학적 상상력도 좋지만 과학과 공학의 성공은 결국 기초지식이 얼마나 탄탄한가에서 결정된다. 짐작컨대 5년 안에 “결국은 기초다”라는 말이 다시 과학, 공학계의 화두가 될 것이다. 과학은 듣기 좋은 말로 꾸밀 수 있는 희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환규 부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hgcho@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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