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여파로 인도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아시아 신흥국 시장이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한국은 금융시장 펀더멘털 등을 감안하면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도 위기상황 전이 가능성은 낮지만 대외 악재에 취약한 한국 경제 구조 특성상 신흥국 위기가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시장 모니터링 강도를 격상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21일 주요 경제연구소는 아시아 신흥국의 불안한 금융, 경제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이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며 위기감 조성을 경계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인도가 국제통화기금(IMF) 지원을 받더라도 한국에 직접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며 “한국은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있어 불안해하지만, 1997년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성장률이 낮긴 해도 최근 상승세로 전환했고, 경상수지가 18개월째 흑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가 닥친 신흥국과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배재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주식시장은 다른 아시아 신흥국과 비교할 때 외국인 자본유출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 하고 환율과 금리 변동폭도 크지 않았다”며 “아시아 신흥국 금융위기가 한국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배 연구원은 “다만 한국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율, 경상수지,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등에서 차별화되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추가 조정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고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지금까지는 국내 은행의 대출 성장률이 다른 신흥국 은행보다 낮은 탓에 주가 수준도 낮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양호한 자산 건전성이 부각돼 타 신흥국보다 안전한 투자처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흥국의 경제위기 우려가 하반기 수출 회복 기대를 낮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허재환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올해 들어 7월까지 한국 수출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1%를 넘기 때문에 실물 부문에서 신흥국 경기 둔화와 위기 우려는 수출에 부정적”이라며 “선진국은 경기가 회복돼도 수입 수요가 회복되는 속도가 느리고 중장기적으로 중국 수요 우려가 남아있어 동남아 위기가 수출 회복 기대를 낮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통화 가치·증시 급락과 이에 따른 한국시장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 강도를 격상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국제금융센터 등은 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시장 점검 내용을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있다. 거시경제금융회의도 수시로 열어 글로벌 자금흐름과 외화유동성 등 상황 인식과 대응 방향을 공유했다.
금융감독 당국도 과도한 단기 외환 차입을 자제하도록 금융사에 권고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국내 금융사의 외환차입 동향 점검을 강화하고 증권사 등 금융사를 대상으로 미국 양적 완화에 따른 위기대응능력평가(스트레스테스트)를 지속로 실시해 위험 요인을 사전에 막기로 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