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어떻게 볼 것인가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를 샀다는 소식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지난 1877년 창간돼 130년이 넘은 최고 지성지가 1994년 설립해 단숨에 부를 쌓은 신흥 백만장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또 인터넷 기업과 올드미디어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미국 미디어 업계는 물론이고 IT 업계와 정재계도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올드미디어에 아마존표 `리모델링`
워싱턴포스트 인수는 기업 아마존이 아니라 베조스 개인 돈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주인이 베조스인지 아마존인지는 서류상의 기준일 뿐 결과는 같다. 아마존이 결국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인수는 △공익을 명분으로 한 개인적 흥미 △워싱턴포스트가 가진 힘을 적절히 활용하려는 정치적 목적 △아마존을 지키기 위한 방패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해석된다.
우선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같은 IT 거인들이 앞다퉈 사회봉사에 나서는 가운데 아마존이 뒤질 수 없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베조스는 인수 발표 직후 워싱턴포스트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나는 워싱턴포스트의 일상 업무를 지휘할 생각이 없으며 편집권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며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끝까지 추적해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길 바라며 잘못된 결과를 낳을 경우 신속하고 완벽하게 잘못을 인정하자”고 전했다. 그는 “아예 워싱턴을 떠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즈니스(아마존)에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베조스는 IT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500만달러를 투자했다. 베조스 사재로 이뤄진 첫 번째 투자다. 경영권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지분의 30%에 달해 원할 경우 언제든지 베조스가 지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워싱턴포스트 투자 배경 역시 사회봉사를 위한 개인적 흥미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치적 야심이라는 시각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베조스는 히스패닉 계열이 많은 뉴멕시코주 출신이다. 베조스가 히스패닉 혈통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만약 대통령으로 나선다면 결코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다. 지난 2000년부터 히스패닉 표심이 미국 대통령 선거의 당락을 결정하고 있다. 베조스의 사업 기반이 캘리포니아라는 사실도 장점이다. 캘리포니아는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다.
또 아직 공론화되진 않았지만 워싱턴포스트가 소위 `아마존세`라고 불리는 인터넷 상거래 세금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는 인터넷 상거래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베조스는 세금 부과에 반발하는 입장이다. 이에 베조스가 아마존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이미 `반 아마존 정서`를 차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올해 아마존의 정치권 로비 금액은 전년 대비 30%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의 방패가 될지 여부는 베조스가 아닌 워싱턴포스트에 달려있다. 미국 신문은 경영과 편집이 독립돼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역시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권 독립이 낳은 결과다.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 임원이 스스로 기업 방패막이를 자처하지 않는 한 아마존 전위부대로 활용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킨들과 아마존닷컴, 그리고 워싱턴포스트
베조스가 아마존 사업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전자책 `킨들`이다. 베조스는 킨들을 출시하며 “사람들이 콘텐츠를 구매하는 게 아니라 기기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면서 매체의 전국화, 나아가 국제화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136년 전통의 워싱턴포스트가 아니라 2013년을 원년으로 하는 새로운 신문을 탄생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킨들은 수년 내 공짜로 보급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100달러 선까지 떨어진 킨들은 5년 안에 30달러 선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하드웨어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콘텐츠`에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포스트는 베조스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킨들과 아마존 소비자의 성향과 관심사를 세심하게 파악해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아마존은 지금도 소비자 개인의 성향에 맞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존 첫 페이지를 열면 해당 사용자가 관심을 가질 물건들이 놓여 있다. 여기에 워싱턴포스트 뉴스를 맞춤형으로 배치해 매출로 직결시킨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워싱턴포스트의 심층 특집을 아마존 버전의 단행본으로 출간한다거나 아마존 데이터를 활용한 문화생활 관련 데이터 기획기사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기사나 기자에 대한 평판관리도 아마존만의 알고리즘을 활용해 이뤄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료 킨들은 콘텐츠 이용 도구일 뿐이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