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대기업의 한국 벤처 외면, 무엇이 문제인가

IT대기업의 국내 벤처 외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는 미국·이스라엘과 함께 대표적인 벤처강국으로 소개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업 인프라가 뛰어나고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창업자금도 풍부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창조경제와 함께 관심은 더 증폭됐다. 여기에 국내 활동 벤처기업 대부분의 주력 업종은 IT다. 그럼에도 굴지의 IT대기업뿐만 아니라 IT로 신수종사업 발굴에 나서는 대기업들이 국내 활동 벤처기업 인수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슈분석]대기업의 한국 벤처 외면,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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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대기업의 한국 벤처 외면, 무엇이 문제인가

대기업들은 벤처기업 인수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대표적인 이유로 꼽는다. 한 경제 연구원은 “1970~1980년대 정부를 등에 업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섰던 것이 여전히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 같은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감수하면서까지 뛰어들기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변명으로 보이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지난 6월 본지가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대표 김동호)와 공동으로 조사한 IT대기업 M&A 대국민 설문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IT대기업의 국내 벤처기업 인수에 대해 국민 47.3%가 `부정적(막아야 한다)`이라고 답했다. `긍정적(권장해야 한다)`이란 답변은 29.0%에 불과했으며, 23.7%는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국민 절반가량이 대기업의 벤처 인수를 반대한 셈이다.

부정적이라고 답변한 이유로는 `도약하고자 하는 벤처기업 의지 차단`과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영역 확장`이 각각 42.3%와 40.8%였다. 대기업의 M&A를 `중소벤처기업 기술 빼가기` `중소기업 영역까지 문어발 확장`으로 본다. 인수에 나서는 대기업은 `뒤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수가액이 적으면 `헐값에 사갔다`는 말이 나오고, 반대로 큰돈이 들어가면 `막대한 현금으로 벤처 기술을 싹쓸이한다`고 비판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부적절하다. M&A는 피인수기업인 벤처가 매도 의사를 나타내야 가능하다. 아무리 대기업이 높은 가액을 불러도 벤처가 거부하면 거래(딜)는 성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민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성숙하지 못한 M&A 문화도 문제다. M&A는 어디까지나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시장논리를 따른다. 매수기업이 많으면 인수대상 기업의 가치(인수가액)는 오른다. 반대로 인수 희망 기업이 한 곳이면 그 회사가 부르는 게 곧 시장가격이다. 많은 벤처·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인수가액에 불만을 토로한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헐값에 사가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들의 낮은 가액을 제시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를 탓할 수만은 없다. 매수 희망자가 적거나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에게 높은 가액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인수 타진에 대한 벤처기업의 반응도 대기업에선 문제로 거론한다. M&A는 절대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돼야 한다. 인수가액, 인수규모 등 모든 것이 철저히 비공개속에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국내 벤처기업은 대기업의 인수 타진을 일종의 마케팅으로 활용한다. 대기업이 인수를 제의했지만 조건이 안 맞아 거절했다는 형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대기업의 인수 타진은 비일비재하다. 딜이 되지 않았다면 크게 자랑꺼리가 아니다. 오히려 검토 후 인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대기업을 통한 M&A 활성화 적기라고 강조한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핵심기술을 조달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에 이어 내달 미국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OIC) 엑셀러레이터를 세운다. 미국 시장에서 우수 벤처·스타트업을 육성해 인수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다. 많은 대기업이 인수에 관심이 크다. 김영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M&A를 위해서는 인수 당시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기술개발, 시장 개척 등을 위해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나서는 것이 옳다”며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동시에 대기업의 벤처 인수 확대를 위한 정책적인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한국 벤처캐피털 자금 회수현황(단위:억원,%)

※자료:한국벤처캐피탈협회

【표】미국 벤처캐피털 자금 회수현황(단위:100만달러,%)

※자료:한국벤처캐피탈협회

◇창조경제에 있어 M&A가 왜 중요한가

창조경제는 개인과 기업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상용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돕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상용화`, 즉 비즈니스다.

창조경제가 각광을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도록 돕는 창업 인프라는 개선 추세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해줄 곳이 마땅치 않다. 단순 아이디어라면 바로 시장으로 들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해야 하는 창조적인 아이템이라면 추가적으로 상당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여기에서 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그동안 쌓은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창업->성장->성숙->회수(재도전)`로 대변되는 벤처생태계의 후반 단계다. 정책자금 또는 외부 투자금을 바탕으로 성장해 추가적으로 자금을 끌어들이거나 회사를 매각해 사업을 확장하는 단계다. 추가 자금을 시장에서 끌어들이는 것이 `공개시장 상장(IPO)`이고 회사 매각이 `M&A`다. 이것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여러 부작용이 뒤따른다. `좀비기업` 양산과 `줄도산`이다. 정부 정책자금만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근근이 버티는 곳이 좀비기업이다. 이들은 혁신과 투자에 나서지 않고, 정부 자금만 바라본다. 창조경제에 반하는 기업군이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공공기관·정책자금 등으로 시장을 뚫어보려는 신생 기업에게는 큰 걸림돌이다. 줄도산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경우도 있지만 시장 개척을 위해 추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다.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모든 자금을 투입했지만 아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술은 좋지만 실적이 없어 시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결국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사라진다. 좋은 기술과 제품만으로 시장을 여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개발만큼 디자인과 마케팅·홍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를 예상 못한 기업가는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신용보증을 이용한 기업가는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를 떠안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IPO와 M&A다. 이 가운데 중요도로 따지만 M&A가 더 크다. IPO는 이미 충분한 실적 등 시장에서 검증된 곳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M&A는 시장 검증 이전 단계다. 즉 IPO에 앞서 거쳐야 한다. 미국에서는 M&A 규모(횟수기준)가 IPO보다 10배 가량 크다. M&A로 대기업에 회사가 매각되고 기업가는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으로 남거나 자금을 회수해 또 다른 창업에 나서거나 투자자로 변신한다. 선순환 벤처 생태계의 전형이다. 반면 IPO에 나서는 기업은 벤처캐피털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는다. 페이스북·트위터·징가 등이 8회(트위터·징가)~10회(페이스북) 외부 투자금을 유치했다.

우리나라는 M&A시장이 거의 없다. 따라서 IPO시장만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고 벤처캐피털자금이 막대하게 존재해 수차례 자금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벤처캐피털 자금은 정부 모태펀드 자금이 들어가 결성된 벤처펀드로 신생 벤처기업의 투자에 집중한다.

M&A 활성화는 민간 자본을 벤처 시장에 끌어들인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벤처투자는 일정 기간 내에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벤처펀드 존속기간이 7년이라면 이 기간 내에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M&A가 없으면 투자자는 IPO만 바라봐야 한다. 자금 회수 통로가 크게 줄어든다. 기업이 IPO할 정도로 충분히 컸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금회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벤처캐피털은 펀드 운용 실적 악화와 추가 투자금 유치 실패 등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M&A시장이 없다는 것은 창조경제에 있어 `죽음의 계곡`이 존재한다고 본다. 기업가·벤처캐피털 크게는 그곳에 투자하는 민간의 자금 회수(Exit)의 길이 막힌다. 이를 뚫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대기업이 혁신을 하기는 어렵다. 대기업은 벤처나 스타트업의 혁신을 활용해야 한다”며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KT에 피인수 김길연 엔써즈 대표

“든든한 우군을 얻은 기분입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확실히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김길연 엔써즈 대표가 말하는 대기업 M&A의 이점이다. 엔써즈는 2011년 KT에 피인수됐다.

김 대표는 KT의 인수로 비즈니스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피인수 전에는 매년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급급했지만 피인수 후에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지분 매각 이유로는 `자금 확보`를 들었다.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서비스를 펼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야 했는데 그것이 언제나 부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았음에도 회사가 정상 괘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추가로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창업 당시만 해도 회사 매각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업의 영속을 위해서는 M&A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본질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M&A가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고려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김 대표는 이어 “많은 벤처기업이 좋은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자금 부족으로 해외시장에 나가지 못한다”며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는 여러모로 시너지가 크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홍기범·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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