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환경부는 과천 수자원공사에서 음식물처리기 인증 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싱크대에 부착하는 오물분쇄기(디스포저)를 제조, 판매하는 업체들이 주요 대상인 만큼 불법 제품의 강력한 단속 의지를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정책 홍보를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환경부는 신도시 등 일부 지역에 한해 디스포저 허용 방침을 내비쳤다. 한 관계자는 이 같은 현황이 정부가 과거 음식물처리기에 대한 관심이 높던 2007~2008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강력한 불법 제품 근절안을 내놓지 못한 채 일부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업체들이 더 나은 제품이나 기술 개발보다는 정부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날 한 참석자는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열심히 해 온 친구가 있고, 한편에는 숙제는커녕 수업조차 불참한 친구가 있는데, 나중에 선생님이 전자든 후자든 똑같이 대한다면 이게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을 제시했다.
정부가 일부 허용 방침을 그대로 유지하면, 이르면 내년 초부터 신도시 등 일부 지역은 디스포저 설치 규제가 풀린다. 소비자는 음식물쓰레기 부피를 줄이고 난 후 싱크대에 모인 찌꺼기를 다시 수거할 필요 없이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보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의 다른 가정까지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느 지역은 되고, 어느 지역은 안 되고`에 소비자가 느낄 혼란도 크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바라보는 지방 정부들도 `일부 허용`이라는 모호한 태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디스포저는 가정 내 싱크대 설치 제품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불법 개조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몇 년째 이뤄지는 불법 단속에도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못했다.
환경문제나 하수관거 관리는 기업이나 소비자의 양심에 맡겨야 할 문제는 아니다. 기술 개발이 기업의 숙제라면, 정부도 불법사례를 근절시킨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그 이후에라야 일부 허용을 논의하는 게 옳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