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꼭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가자. 미국 전자업계는 시장에서 외산제품에 자사 제품이 밀릴 때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국 정부를 쳐다본다. 그때부터 외국 경쟁사들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안은 채, 지난한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시작했고 올 1월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그 시발에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월풀이 있다. 월풀의 제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무혐의 판정을 받은 한국산 냉장고에 대한 제소도 월풀이 진행했고, 그 이전에는 유럽 가전업체 등 무차별 제소에 나서기도 했다. 미 가전업계는 제품 경쟁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보다 일단 외국 경쟁업체 탓부터 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버렸다.
사실 위기에 몰려 자국시장만큼은 지키고 싶은 기업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미 정부의 반덤핑 관세 부과 결정 방식에 있다. 미국은 덤핑마진율 계산에 `제로잉(zeroing)` 방식을 적용한다. 제로잉이란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으면 그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지만,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높으면 마이너스로 마진을 매기지 않고 제로(0)로 계산하는 아전인수 격 방식이다.
지난 6월 국내 전자업계 대표단체인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는 세탁기 반덤핑 판정 등 미국의 일방통행식 보호무역 기류에 반발, 이례적으로 정부에 WTO 제소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제소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KEA에 따르면 미국과의 WTO 분쟁은 총 15건으로, 판결이 난 10건 중 7번은 한국이 승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우리 정부는 제소에 앞서 신중을 기했고, 바꿔 말하면 매우 방어적으로 대응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번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를 출범시킨 것은 산업과 통상 정책의 밀접함을 절감한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는 산업 관련 국제분쟁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고 전문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제기해 왔다. 이젠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미국의 가전분야 보호무역에 우리도 강력히 대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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