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자 전자신문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관련 기사를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화평법은 `빠른 대응`을 주 무기로 내세워온 중소기업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법이다. 신물질을 개발해 고객에 시제품을 제공할 때, 대개는 소량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연간 100㎏ 이하는 등록 면제` 조항 덕에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화평법에 의하면 앞으로는 수입 또는 제조에 앞서 평가와 등록 절차를 모두 마쳐야 한다. 건당 약 7000만원의 비용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문제다. 평가 및 등록에 9개월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준비 중인 시행령·시행규칙에라도 이런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 법은 기업의 손발을 묶는 법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이유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신재료를 개발하면 자체 평가를 거쳐 특성 평가를 기존 사용자로부터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소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이런 중소기업의 활동이 우리나라 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원동력이었다고 자부한다.
20여년의 전자재료 역사를 되돌아보면 미국이 전자부품·재료시장에서 일본에 리더 자리를 내준 것은 고객 대응력에서 뒤지면서부터다. 그런 일본도 한국에는 따라올 수 없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에서 우리나라가 1등이 되는 데에는 중소중견 기업의 발 빠른 대응이 있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이는 단지 중소 재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재료 공급 속도가 늦어지면 그 재료를 사용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의 개발도 늦어질 것이다. 연관된 장비나 기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산업 등의 개발속도도 같이 영향을 받게 된다.
각국이 자국의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만 기업의 손발을 묶어 버리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 신규화학물질일지라도 그 용도가 연구개발(R&D)이라면 선진국은 등록절차를 면제해 주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동안 인정해왔던 소량면제, 연구개발 시 면제 등의 조항까지 없애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럽의 `EU-REACH`라는 법도 현실을 감안해 최대한의 배려를 했다. 일례로 1톤 이하 물질은 등록을 면제했다. 그럼에도 여러 강화된 조항 때문에 상당히 많은 중소 재료 업체들이 문을 닫고 말았다.
소량면제에 관한 규정도 우리가 유럽보다 이미 10배나 더 엄격한데 이마저도 완전히 없애 전 세계 유일무이한 법을 꼭 만들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로써 잃게 될 기업이나 기회는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중소기업의 규제 대응력은 글로벌 기업, 대기업 등에 비해 뒤지는데 강도가 더 센 규제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단지 물성 확인만 해도 되는 데까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등록하라는 것은 중소기업에 치명적인 손톱 밑 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이런 부분이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기업은 연구개발비 증가, 기회 상실, 물가 상승 등 난제에 부딪혀 국외에서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한 기술 공동화 현상은 국가 경쟁력을 송두리째 넘겨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전부를 걸고 이 산업에 매진해 온 중소기업인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수개월 내 시행령 초안이 마련된다고 한다. 강한 규제를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원천봉쇄로 완전한 안전지대를 만들려하는 것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처사라 할 수 없다. 최소한의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길은 열어 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규오 알파켐 사장 koc@inkmat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