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구과학관과 현대판 음서(蔭敍)

음서(蔭敍)는 고려시대 5품 이상 관직을 지낸 관리 아들에게 벼슬을 내리던 제도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온 음서제는 지배계급이 대를 이어 지위와 부를 누릴 수 있는 수단이 됐다. 고려에서 조선시대를 이어오며 귀족 문벌을 만들었던 과거의 음서는 폐지됐지만 최근 현대판 음서가 지역을 뒤흔들고 있다.

Photo Image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립대구과학관에서 벌어진 직원공개채용 특혜 의혹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구과학관이 서류와 면접 전형을 통해 24명을 합격시켰는데 이 가운데 11명이 공무원과 공무원 자녀, 언론인 배우자로 밝혀졌다. 직원을 선발하는데 전공이 뭔지, 학점과 어학성적은 어떤지, 자격증은 있는지 전혀 따져보지도 않았다. 필기시험마저도 없었다. 선발 기준에 의혹이 생기는 대목이다.

대구과학관은 초봉 4000만원, 정년 61세로 출발부터 이미 `신의 직장`이라는 조건을 갖췄다. 이런 직장을 공무원들은 그냥 놔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합격자 명단에는 대구시 고위직 등 공무원 자녀 4명이 올라가 있다. 여기에다 과학관 관련 업무를 해온 미래부 직원을 포함해 공무원 5명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을 합격시킨 면접관 구성은 점입가경이다. 면접관은 대구과학관장과 대구과학관 직원, 대구시 사무관, 미래부 공무원 등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대부분이 합격자나 합격자 부모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잡음이 일자 경찰이 특혜 비리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대구시는 지난 10일 대구과학관 직원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인물에 대해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시민단체들도 대구과학관장의 즉각 사퇴와 비리 연루자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구린내가 난다. 고려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신분을 대물림하려는 공무원들의 작태는 더욱 한심스럽다.


운영 주체인 미래부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도록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것은 어떤 변명도 용납될 수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채용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개선하는 게 급선무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