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7>최선의 선택위한 끊임없는 실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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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전력산업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의 구조를 만들었다.

광활한 국토 면적으로 운영방식이 다른 다수의 전력시장을 형성했고 각 주정부도 서로 다른 규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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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전력 산업은 현재 운영방식이 다른 다수의 전력시장을 형성했다. 사진은 PJM 필라델피아 사무소 콘트롤타워.

경쟁구조 도입을 두고 주정부의 인식과 선택도 달랐다. 1990년대 지역 간 전기요금 격차가 심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력 산업 경쟁체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소매 부문까지 경쟁구조를 안착시킨 주정부는 16개에 불과하다. 인구, 전력수요가 많은 주는 발전, 송배전, 판매 부문에 완전 경쟁을 도입하며 전력산업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했지만 여전히 주정부 소유의 수직 통합 형태 시장을 운영하는 주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효율적 전력산업 구조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각 주, 시장이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 같다.

◇130년 역사, 미국 전력 산업

미국 전력산업 역사의 시작은 토머스 에디슨이 뉴욕시 발전소를 최초로 운전한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민간 기업이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며 덩치를 불려나갔다.

방만해진 전력회사는 대공황 시기에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겪는다. 규제법안 제정으로 다수의 전력 자회사를 거느린 전력대기업은 발전·송전·배전 부문이 수직 통합된 공공전력기업(IOU) 형태로 모습을 바꾼다. 주정부와 연방정부 규제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90년대 이전까지 각 지역에 기초한 투자자 소유 IOU가 발전, 송전 그리고 배전을 모두 관리하는 독점체제를 유지했고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았다.

1992년 전력산업 경쟁을 확대하는 국가에너지 정책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전력시장 진입장벽을 없애고 송전선 접속 개방을 보장했다. 이때부터 전력시장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전력 계통운영을 전담하는 기관(ISO)을 만들 것을 촉구했다. 또 송전망을 소유하고 있는 공익 사업자에는 소규모로 소유·운영해온 송전망을 대규모 송전망으로 통합하는 형태로 지역송전망기구(RTO)를 구성하도록 했다.

미국 전력시장을 말할 때 주요 거점으로 말하는 뉴 잉글랜드 ISO, 뉴욕 ISO, PJM(RTO), 중서부 ISO, 텍사스 전력 협의회(ERCOT), 캘리포니아 ISO가 형성된 배경이다.

판매(소매) 부문까지 완전한 경쟁을 도입한 주도 서서히 증가했다. 다른 주보다 소비자 전력요금이 높은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20여개 주가 변화를 택했다. 이들 주에서는 최종 소비자가 전력판매회사와 요금제도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그 이후 소매 부문 경쟁도입을 중단한 주가 나타나면서 현재 16개주만이 소매경쟁구조를 도입, 안착시켰다.

미국은 전력기업 규제도 일찍이 안착했다. FERC가 도매가격, 송전설비이용요금 등 큰 그림의 규제를 담당한다. 또 주마다 공익위원회(PUC)가 열려 소매요금 감시, 송전설비건설 인허가 등을 수행한다. 경쟁구조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요금 폭등, 사회약자의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규제 기관에 명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경쟁은 선택…성패 속단도 일러

미국 전력시장은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다양한 성과를 보였다. 경쟁 구조가 안착하면서 전력 구매자와 판매자가 늘어나 예비율이 높아졌고 시장조건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50여개 주에서 시행한 도매경쟁의 효과와 20여개 주에서 시행한 소매경쟁 도입 효과로 보는 것이 보통의 시각이다.

펜실베이니아 주정부가 2002년 발행한 주정부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미국 소매전력요금은 1996년에 비해 낮아졌다. 가정용은 13.67%, 상업용은 13.0%, 산업용은 4.8%씩 각각 하락했다.

매사추세츠 소비자는 전력가격 하락으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1억1000만달러 요금을 절약했다는 보고도 있다. 같은 기간 천연가스 가격은 50% 상승했다. PJM 지역은 도매전력가격이 1998~2003년 27% 하락했고 2002년 전력요금이 15% 하락했다. 고객은 3억2000만달러를 절감한 것으로 추산한다. 산업용 고객은 물론이고 일반 소비자까지 전력공급회사 선택권이 늘어나면서 시장 경쟁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에 실패 사례도 있다. 캘리포니아 전력시장의 붕괴는 이견이 따르지만 경쟁구조 도입 실패를 이야기할 때 심심치 않게 사례로 등장한다.

1998년 소매 부문에 경쟁을 도입한 캘리포니아는 2000년 전력위기를 겪었다. 도매전력가격이 급상승했고 전력사용이 증가하는 계절에 전력부족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기에 지역 전력기업 재무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2000년 12월 캘리포니아 전력거래소의 평균 시장 청산가격은 376.99달러/㎿h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 29.71달러와 비교해 11배 정도 상승했다. 이 기간 지역 전력회사가 도산하면서 시장의 위기는 정점에 달했다.

경쟁을 도입하지 않은 주도 있다. 미주리 등 인구가 적고 발전가격이 낮아 경쟁이 필요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이로 인해 일부 소수의 주에서는 소비자가 시장에 의해 책정된 가격에 전력을 구매하는 반면에 지역 독점 전력회사로부터 서비스비용 수준의 낮은 가격에 전력을 사용하는 소비자도 있다. 지역마다 시장구조의 차이가 있는 미국 전력시장의 단면이다.

◆PJM 들여다보니…셰일가스 이슈 등 미국 전체 전력 시장 트렌드 보여

PJM 관할 지역은 경쟁구조를 안정적으로 도입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800개가 넘는 전력회원사가 활동하는 거대 시장으로 전력산업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세계 전력 기업 직원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PJM은 워싱턴DC, 뉴저지 등 총 13개주에 걸친 송전망을 관할하는 지역송전망기구다. 전력 도매 시장을 운영하고 장기적 송전망 건설계획을 수립한다. 우리나라 기관과의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한국전력, 전력거래소의 기능을 일부 보유하고 있다.

PJM의 명칭은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메릴랜드 주의 앞글자를 따왔다. 최초 세 개 주의 전력시장을 통합했고 이후 각 주정부가 PJM 관할 전력시장에 참여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PJM 관할 지역에서도 펜실베이니아주 등 소매경쟁을 안착한 곳이 많다. 13개 주 대다수에서 일반 소비자가 우리나라 이동통신시장에서처럼 전력 판매회사를 직접 선택하는 완전 경쟁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PJM은 권할 내 발전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셰일가스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내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하면서 석탄 화력발전소 비율이 감소하는 반면에 가스 화력발전소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다.

PJM은 권역 내에서 올해 475㎿를 시작으로 내년 1430㎿, 2015년 6371㎿ 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퇴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로 점차 비중이 감소하는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셰일가스 등장이 직접적 원인이다.

PJM은 내년도 가스화력발전소 용량이 5만4000㎿까지 상승해 석탄화력발전소 설비용량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PJM의 이러한 예상은 현재 셰일가스 가격 추이를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2006년 동일한 열량을 낼 수 있는 양을 기준으로 가스가격은 석탄 가격에 비해 일곱 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2010년 들어 가스, 석탄 가격차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난해 초반에는 가스 가격이 석탄 가격보다 낮은 상황도 잠시 연출됐다.

PJM은 셰일가스의 등장으로 도매 시장 전력 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력 거래가격에서 발전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기 때문이다.

특히 셰일가스의 등장은 예상과 달리 신재생에너지의 보급도 앞당길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관할 지역 내 주정부가 이미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셰일가스의 등장은 신재생에너지 도입에 의한 전력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풍력 1만9351㎿, 태양광 2192㎿ 등 PJM 권역 내에서만 2만3000㎿ 규모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가 현재 건설되고 있거나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애덤 키치스 PJM 시스템 계통 처장은 “셰일가스 생산으로 인한 발전가격 하락과 전력효율성 향상을 위한 수요관리사업은 미국 전력시장을 관통하는 화두”라며 “가격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계통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전력업계의 현안”이라고 말했다.

◆웨인 가드너 펜실베이니아주 공익위원장

“전력산업구조, 규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해당국가 상황과 법에 근거해 전력산업구조가 정해지면 그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운영, 규제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웨인 가드너 펜실베이니아주 공익위원회(PUC) 위원장은 전력산업 구조를 두고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고 강조한다. 사법체계처럼 전력산업 구조도 나라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성공사례가 다른 국가에서는 안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가드너 위원장은 다만 그 안에서 효율향상을 저해하거나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요인을 찾고 억제하려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송전설비 도입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선택은 있을 수 없지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며 “송전설비 건설체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정부, 주민, 송전회사가 모두 참여해 논의하는 시스템을 안착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가드너 위원장은 “미국은 지역 주민이 송전설비 반대 이유를 설명하고 보완대책을 요구할 수 있는 의사전달체계가 확립돼 있다”며 “송전설비 건설회사는 이러한 요구 가운데 실제로 반영할 수 있는 요구는 최대한 수용하고 이 과정에서 서로 투명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문화가 정책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금규제에도 입을 열었다.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전력가격 상한제를 폐지했다. 발전원가가 도소매 시장에 왜곡 없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기능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다. 소비자요금이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랐지만 소비자가 전력판매기업을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경쟁 효과도 발생했다.

가드너 위원장은 “규제를 최소화한다는 의미보다는 경쟁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며 “각국 전력시장 상황은 다르지만 경쟁과 규제의 조화를 이루고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해 요금 구조를 왜곡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시장 정상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