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간 잇속 챙기기와 집단 이기주의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이 후퇴하고 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가진 제재권을 빼앗아왔고, 금융감독원은 조직이 두 쪽으로 분리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선진화된 금융 감독 체계를 기대했던 금융권과 국민까지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견원지간을 방불케 하는 금융위와 금감원 갈등구조가 또 한 번 드러났다. 금융소비자 전담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가 금융감독원 내에 남게 됐다. 하지만 인사권 예산 권한이 금감원장에서 금소처장으로 바뀌고 금감원과 동등하게 검사 계획 권한이 주어져 금융감독원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이 결정해 왔던 금융회사 경징계도 금융위가 다시 검토하는 `2중 심사` 체계까지 도입해 두 기관 간 첨예한 대립이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는 21일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TF는 논란의 중심이 된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독립은 예상대로 금감원 내부에 두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기능을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2안으로 제안했지만 감독기구 개편에 따른 불확실성 등을 감안해 1안을 TF 추천 안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금소처장을 금융위 당연직으로 격상한 것. 금감원장의 임명 절차와 동일하게 하고 금감원장만 참석하던 금융위에 금소처장까지 들어가게 만든 셈이다. 특히 금소처의 인사 및 예결산 권한을 금감원장에서 금소처장으로 이관, 권한을 금융위가 가져오게 됐다.
현재 `부원장보`급인 금소처장의 지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금융위원회 당연직으로 격상돼 금감원장과 같은 급이 된다. 금소처는 금융회사에 대한 자료제출요구권과 조사권을 갖게 되고 금감원에 대해서도 자료제공요청권, 사실확인요청권, 금융위·금감원에 대한 조치건의권이 생긴다.
금융회사 제재에 대한 금융위의 역할도 강화된다. 선진화 방안은 금융위에 제재소위원회를 두고 금감원의 제재를 재검토하도록 했다. 현재 금감원은 금융사를 제재할 때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경징계와 중징계로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중징계는 금융위 정례회의에 보고해 확정하지만 경징계는 따로 보고하지 않고 금감원이 즉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경징계도 금융위를 거치도록 했다. 한 번 더 심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내부에서도 금융위의 독선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사소한 징계건까지 금융위의 눈치를 보면, 금감원이 왜 존재해야 하냐”며 “이중으로 보고체계가 마련될 경우 제재 시간 또한 길어져 시장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금융권도 두 기관의 힘겨루기 양상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검사권과 조사권을 둘러싸고 2개 조직이 관여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잇속을 챙기려는 집단 이기주의를 담은 개편안”이라며 “업무 중복에 시어머니 두 명을 모시게 됐다”고 꼬집었다.
금감원 노조도 집단 대응에 돌입할 태세다. 노조 관계자는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은 금융위 배만 불리는 왜곡의 결정체”라며 “금융위가 TF를 주도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로 TF의 결론은 대국민 사기극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표] 금융감독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추진안(1안)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