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압 차단기 등 전력기기는 제품 개발 후 시험·인증이 필수다. 공식 인증에 앞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성능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설계해석 프로그램이다. 전력기기 설계해석 프로그램은 시험인증 기간의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로 기업 경쟁력을 높여주는 전력분야 IT융합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지멘스 등 세계적인 전력기기 업체는 오래 전부터 설계해석 프로세스를 구축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고히 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에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없었고 개발 능력도 부족했다. 국내 전력기기 산업이 선진 외국에 뒤질 수밖에 없었던 한 배경이다.
김홍규 한국전기연구원(KERI) HVDC연구본부 책임연구원(45)은 초고압 차단기 등 전력기기 설계해석 프로그램을 국내 처음으로, 유일하게 연구 개발해 온 이 분야의 선구자다.
SW개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과 대학원생 시절, KERI의 차단기용 해석 프로그램 개발 과제를 의뢰받아 수행했다. 이 인연으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곧바로 KERI에 스카우트됐다.
KERI에서 그는 초고압 차단기 등 5종의 전력기기 설계해석 프로그램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효성, 현대중공업, 일진전기, LG산전 등 차단기 제조업체에 공급돼 현재까지 제품 및 기업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제품 개발 후 1년 넘게 테스트를 해도 시험 인증을 받지 못했던 애로 사항을 이 프로그램으로 일거에 해소했다. 연 2억~3억원 규모의 시험 인증 비용도 1억원 안팎으로 줄었다.
초고압 차단기용 해석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전력계통 전반을 꿰뚫는 지식과 뛰어난 SW 개발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고부가가치 기술이지만 국내에 전문가가 거의 없는 이유다. 김 연구원은 “초고압 차단기의 성능을 해석하려면 2만도 이상의 고온 아크 플라즈마와 관련된 전자장, 열유동 해석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프로그램에 필요한 전자장, 열유동 및 아크플라즈마 모델링의 모든 루틴을 직접 개발해 적용했다. 국내 중전기기 업계는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전기공학용 해석프로그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정부 차원에서 국내 중전기기 업계 대상의 해석 프로그램 기술지원 방안을 추진하면 선진기업과 기술 격차를 줄이고, 후발 중국 기업에는 기술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