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가 내놓은 웹보드 게임 `자율규제안`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실상 거부했다.
업계가 그간 논의 과정을 무시하고 협의없이 발표한 데다 정작 알맹이가 빠졌다는 게 문화부 입장이다. 업계 또한 “죽으라는 것이냐”며 서운함을 보였다. 규제안 충돌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2일 문화부와 업계에 따르면 게임산업협회는 지난달 31일 고스톱과 포커 등 이른바 고포류 웹보드 게임에 한해 이용시간 단축, 게임상대방 선택 금지(랜덤 매칭) 등을 골자로 한 자율규제안을 제시했다.
자정결의안은 이르면 이달 시행할 예정이다. 업계는 자율안이 기존 결제한도 지정 외에 이용시간 축소까지 포함해 이용자 보호에 한 발 더 다가섰다고 밝혔다.
반면에 문화부는 업계의 자율규제 내용이 사행성 중독에서 국민을 보호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수위가 너무 낮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수명 문화부 게임산업과장은 “게임 시간을 줄이거나 랜덤매칭을 강제하는 것만으로는 불법 환전을 근절하기 어렵다”며 “게임에 보다 강력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업계가 선택한 자율규제안을 시행하더라도 정부는 별도로 `웹보드 사행화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는 강력한 뜻도 내비쳤다. 이를 위해 이달 중순께 시민사회단체, 경찰, 법학 전문가, 게임전문가 등 각계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개최하고 관련 대책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문화부가 업계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게임머니 베팅한도다.
문화부는 베팅한도를 1회 1만원, 하루 10만원으로 정할 것을 업계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정부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철회 권고를 받은 당초 문화부의 규제방안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용이다.
문화부는 웹보드 게임을 규제하는 이유로 사행성 게임 중독으로 생기는 피해가 심각한 점을 꼽았다. 이 과장은 “웹보드 게임 중독과 불법 환전으로 한 시간도 안 돼 수백만원을 잃거나 재산을 날리면서 가족이 해체된 사례도 접수됐다”며 “게임이 일정 수준을 넘어 이성을 잃게하는 도박으로 변질될 때는 적절한 규제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복권이나 카지노 등 사행성이 적용된 분야는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이에 대해 직접 규제는 역차별이나 풍선효과를 수반할 수 있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간, 머니 한도 등 게임 안에서 잠금장치는 다 마련한 만큼 이제 게임 밖에 있는 불법 환전 등을 퇴치하는 일이 정부·업계 공동노력으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은 향후 점진적으로 개선해 가며 자율규제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구잡이식 규제는 웹보드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산업 전체를 위축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정해상 단국대 법대 교수는 “사행성이나 청소년보호 등을 이유로 진행되는 마구잡이식 규제는 문화적 다양성과 확장성으로 성장하는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뿐”이라며 “법이나 정책은 책임 전가가 아니라 문제 핵심을 파고들 때 국민이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