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코쿠섬. 본토에서 신칸센을 타고 바다를 건너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거대한 공업지구다. 본토와 면한 동북 지방 해안선을 따라 공장 지대가 이어진다. 바다를 건너 본토에서 시코쿠 섬으로 들어가는 시오카제 특급 열차를 타고 30분 정도를 더 달리면 에히메현 니이하마에 도착한다. 니이하마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스미토모화학, 스미토모금속 등 스미토모 그룹 계열 제조 시설이 바닷가에 펼쳐져 있다.
스미토모화학 제조 설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니이하마지구, 오에공장, 키쿠모토지구가 마주보고 있다. 바다 밑에는 파이프가 연결돼 있어 원재료와 각종 부자재가 오간다. 스미토모그룹의 모태인 베시 구리(동) 광산에서 나온 흙으로 매립한 곳이다.
지난 1600년대부터 장사를 해 온 스미토모 일가는 1861년 당시 일본에서 유망한 사업으로 꼽히던 동광산 개발을 시작한다. 스미토모 그룹의 출발점이다. 1913년 스미토모 금속은 광산에서 나오는 유황가스를 관리하기 위해 스미토모화학을 신설했다. 황산을 이용해 비료를 만들었다. 광산의 땅을 파고 직원들이 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중공업을 설립했다. 마을에 댈 전력이 필요해 스미토모전력이 생겼고, 캐낸 구리를 팔면서 금융업도 갖췄다. 하나의 사업이 또 다른 사업을 낳고 그 사업이 또 하나의 사업을 일으키는 식이다. 100년이 흘렀다. 스미토모화학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 1조9524억9200만엔(약 21조8167억5500만원)에 이르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오에공장, 한국과 밀접한 첨단소재 전초기지
에히메 공장지대의 가운데에 위치한 오에 공장은 이 회사의 첨단 소재 전진 기지다. 신제품 개발, 상품 설계가 이 곳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이뤄진다. 최근 소재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는 리튬이온전지용 음극재·양극재·분리막,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재료,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소재, 디스플레이용 컬러필터나 편광판이 오에 공장에서 나왔다. 하루 5~6만매 편광판을 생산할 수 있는 4층 규모 대형 클린룸은 이 회사의 자랑이다. 폴리에스터(PET) 필름, 셀룰로오스, 폴리비닐알콜(PVA), 트리아세테이트셀로즈(TAC) 필름의 조립품인 편광판은 이물질을 없애고 투과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스미토모화학은 이 분야 선두 업체다. 디스플레이 필수 소재인만큼 한국과 밀접하게 교류한다. R&D센터에는 한국인 연구원이 30명가량 근무하고 있다.
◇기초화학과 첨단소재 망라
스미토모화학의 강점은 기초 화학과 첨단 소재가 함께 발달했다는 점이다. 유기화학(갈륨 등)과 무기화학(알루미나, 사파이어 등) 두 가지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사업 부문은 기초화학, 석유화학, 건강농업, 의약품, 정보전자 5개 사업부문으로 나뉜다. 기초화학 분야는 차량 경량화 소재 등 나일론 플라스틱의 원재료가 되는 카프로락탐, 발광다이오드(LED), LCD 재료인 알루미나, 차량용 백라이트 등에 쓰이는 메틸 메타크리레이트(MMA) 폴리머, 고순도 알루미늄, 접착제, 향균제 원료인 레조시놀 등을 개발한다. 스미토모화학의 알루미나는 LED 사파이어 웨이퍼를 만드는 필수 재료로, 이 회사가 독점 공급 하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부는 방수 기능이 있는 폴리에틸렌, 단열재와 차량용 시트에 쓰이는 프로필렌옥사이드, 자동차 범퍼나 식품 용기, 전자제품 케이스 등에 다양하게 응용되는 폴리프로필렌, 자동차 타이어나 호스, 창문이나 문의 실링제로 활용되는 합성 고무를 개발, 생산한다.
농약·살충제·비료·모기장 등은 건강농업사업부에서 담당한다. 의약품은 정보전자사업부문과 더불어 최근 가장 성장하는 사업이다. 당뇨병, 암, 파킨슨스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정보전자사업부문은 편광판과 컬러필터, 터치스크린패널(TSP), 리튬이온배터리용 소재 등 차세대 유망 기술 분야를 연구한다. 능동형(AM) OLED의 컬러페이스트 주요 공급사다. OLED용 고분자 폴리머는 내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한다. 요시노부 사토 글로벌 기술기획부장은 “삼성디스플레이가 현재 OLED 제조에 사용하는 저분자폴리머 대신 고분자 폴리머를 쓰면 대형 화면도 인쇄(프린팅) 방식 OLED 패널을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0년 기업이 지닌 200년 먹거리
이 회사가 가진 유기·무기 화학 기술은 다방면에 걸쳐 응용할 수 있다. 그룹내 제조업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도 많다. 100년간 축적해 온 기술로 앞으로 100년도 내다본다. 특히 정보전자사업부와 의약품 매출액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아직까지 정보전자사업부문 매출액은 전체의 15%, 의약품은 20%에 불과하지만 두 개 사업부 덕분에 최근 10년간 외형이 두 배로 커졌다. TSP 역시 스미토모화학의 성장을 이끌 전망이다. 스미토모화학은 전 세계 AM OLED용 온셀(On-Cell) 방식 TSP를 거의 독점 공급하고 있고 커버유리일체형(G2) 시장 진입도 눈앞에 두고 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