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를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29일 주요 외신은 미국 법무부가 코스타리카에 위치한 디지털 화폐 유통업체 리버티리저브(Liberty Reserve)를 60억달러(약 6조8000억원) 돈세탁 혐의로 기소했다고 29일 보도했다.

리버티리저브는 미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17개국에서 인터넷 송금과 구매, 현금 교환이 가능한 디지털 화폐를 유통한다. 이용자는 100만명 이상이다. 미국 법무부는 리버티리저브가 7년간 아동 포르노 웹 사이트와 마약 거래와 관련된 범죄자들의 불법자금 돈세탁을 도왔다며 관계자들을 체포하고 사이트를 폐쇄했다.
미 법무부 관계자는 “리버티리저브는 오래전부터 불법적인 용도로 널리 사용돼왔다”며 “도난당한 신용카드 데이터와 개인 정보를 매매해 생긴 불법 자금을 축적하고 세탁하는 데에도 악용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이 국제 돈세탁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고 덧붙였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리버티리저브가 이름과 주소 같은 사용자 식별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계좌는 `러시아 해커`, `해커 어카운트` 같은 노골적인 계좌명을 사용한다. 합법적인 금융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불법 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리버티리저브 경영진은 코스타리카의 자금세탁방지법을 회피하기 위해 거래 정보를 제공하고 의심스런 활동을 모니터하는 포털을 별도 개설했다. 하지만 내부 직원 조사 결과 외부로 공개된 정보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이번 사건은 최근 이슈로 떠오른 비트코인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던 디지털 화폐의 문제점이 현실로 불거졌다는 점에서 제2, 제3의 리버티리저브 사태가 연이어 발생한 가능성이 매우 크다. 편의성을 무기로 디지털 화폐가 확산될수록 악용 사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디지털 화폐가 지갑에 넣고 다니는 현금보다 안전해보일 수도 있지만 악용 가능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없는 `심해 사이트(Deep Web)`에서 무기와 마약을 불법 거래하기에는 디지털 화폐가 제격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추적이 어려워 돈세탁이 잘된다는 점, 해커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은 디지털 화폐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 중 하나다. 앤더슨컨설팅은 “디지털 화폐로 인한 화폐 질서 혼란을 방지하고 디지털 화폐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하고 정부가 규제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은 정부 규제를 받는 디지털 화폐 거래소 설립을 논의 중이다. 또 사용자 추적이 가능한 유통 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