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일본 산업계가 아베 신조의 기상나팔 소리에 깨어나고 있다. 곡명은 `아베노믹스`다.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20년간 일본 기업이 날린 시가총액 360조원 가운데 170조엔을 아베노믹스로 되찾았다”며 칭송가를 부른다.

잃어버린 과거 20년 중 10년을 아베정권 6개월 만에 만회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업 실적이 방증한다. 도요타자동차는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1조3209억엔(약 14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영업이익 1조원 재돌파는 2008년 이후 5년 만이다.
전자기업 파나소닉, 올림푸스도 오랜 부진을 털고 흑자전환했다. 전자사업이 아닌 금융사업 호조 덕에 이익을 내긴 했지만 소니 역시 5년 만에 흑자달성에 성공했다. 그간 아베가 쏜 두 개의 화살(재정지출 확대, 무제한적인 양적완화)은 제대로 약발이 먹혔다.
아베의 활시위엔 `성장전략`이란 세 번째 화살이 올려져 있다. 정부가 규제개혁을 추진해 제조업 투자를 촉진하고, 총리가 세계 수준의 공정기술 세일즈 외교에 나서는 게 골자다. 세 번째 화살은 아직 활시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원전 수출 분야에서 이미 효과를 내고 있다. 25조원 규모 터키 원전 과녁을 꿰뚫었는가 하면 100조원 규모 인도 원전시장도 제대로 훑고 지나갈 태세다. 초대형 원전사고로 전력난을 겪고 있는, 국민 여론에 떠밀려 원전제로를 선언한 일본이 세계 원전시장을 싹쓸이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70%를 넘나든다. 이쯤되니 무제한 양적완화에 따른 자산거품 부메랑을 맞게 될 거다, 엔화 약세가 저주로 돌아올 것이다 등 주변국의 시셈섞인 비평도 쏟아진다. 그래도 일본은 화살을 계속 쏘아댈 태세다. 20년 장기불황, 전자기업의 몰락,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밑바닥을 경험한 일본은 더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열매가 독이는 사과인지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따먹지 못할 포도를 신포도로 간주한 것인지는 시간이 증명하겠지만 잃어버린 20년 중 10년을 만회한 일본으로선 손해볼 게 별로 없다.
전력난을 겪는 일본이 발전에 필요한 원유를 더 많이 수입하면 엔저 여파로 부담이 커지고, 발전비용이 높아지면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론을 잘도 피해 간다. 일본은 외교력을 동원해 값싼 미국산 셰일가스 도입을 성사시켰다. 미국산 셰일가스 도입은 타 에너지 수출국과의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카드로 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일본 가솔린 소비자가격은 우리보다도 10% 이상 싸니 이 역시 아이러니다.
일본이 살아나고 있다. 반면에 엔저 융단폭격에 직면한 우리 산업계는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자동차, 기계, 금형 등 상당 분야에서 악영향이 나타난다. 이젠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할 판이다. 갑의 횡포, 경제민주화, 통상임금 문제의 해법찾기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당장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거시적 경제정책 수립이다.
관망하던 정부도 이젠 급격한 환율변동에 대한 방책을 내놓을 모양이다. 정부가 결심했다면 확실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는 결코 도움이 안 된다. 그것은 강한 화살이거나 화살을 막아낼 튼튼한 방패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일본에 원전시장이든 전자시장이든 주도권을 다시 내주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정부가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할 분명한 이유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