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대]을지로

지난 21일 국회 기자회견장.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민 의원은 “`갑을관계 3법`으로 불리는 가맹사업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민주당은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 전원 공동 발의로 `을지로`를 입법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여의도 국회는 `을지로`가 최고 유행어다. 지역명 을지로가 아니라 `을을 지원하는 법(Law)`이라는 표현을 줄인 말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고질적 병폐인 `갑을(甲乙) 관계`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법을 발의하고 있다.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 문화는 개발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온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갑과 을이 상하관계로 규정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이제는 이러한 고질병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의 핵심 화두 중 하나가 경제민주화다. 대기업은 하도급업체인 중소기업 위에 군림하는 갑을 관계를 수술해보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이 같은 갑을 문화를 바꾸지 않은 한 창조경제는 요원하다는 것이 정관계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과거에도 봤던 것 같은 데자뷰로 느껴진다. 과거 정부에서도 동반성장, 상생 등이 여러 가지 명칭으로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개선된 것은 별로 없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일회성 이벤트를 벌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시류에 편승해 겉만 다르고 알맹이는 똑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을을 돕겠다고 하는 정치권에 시큰둥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 같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국회가 스스로 갑의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건 어떨지. 이왕 할 거라면 실천의지를 제대로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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