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창조경제가 화두다. 창조경제를 구현해 우리나라를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당대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백가쟁명 식의 수많은 이론이 등장한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나노융합이 창조경제 구현의 지름길`이라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자칫 또 하나의 논쟁을 더하는 것으로 비춰지겠지만 나노기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이해한다면 나노기술이 창조경제의 진정한 주역이며, 초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노기술은 창조성(創造性)의 결집체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나노융합산업은 창조경제처럼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이 극대화된 분야다.
카본나노튜브라는 소재는 1991년 새롭게 만들어진 신물질이다. 뛰어난 전기 전도성과 기계적 특성으로 첨단 정보기술(IT) 제품과 소재의 기능을 혁명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양자점(Quantom dot) 나노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물리적 특성과 전기·전자·기계적 성질을 가진 신물질, 신소재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나노기술의 선구자 에릭 드렉슬러는 1986년 저서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에서 “분자 수준에서 제품을 만드는 시대가 도래한다. 나노기술은 `궁극의 제조기술`”이라고 역설했다.
나노기술은 IT, 생명공학기술(BT), 에너지·환경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등 기존 기술의 발전적 융합을 촉진시키는 기반 기술이다. 창조경제를 기술과 산업 융합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나노기술은 산업융합 핵심 원천기술로 창조경제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나노기술은 우리 경제를 추격형에서 선도형 구조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이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우리 주력산업은 1970~80년대 출발 당시 선진국과 격차가 상당했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현재 우리의 나노기술은 주요 선진국과 대등한 상황이다.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나노기술을 제조업에 접목하는 나노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다른 분야와 달리 선도형 창조경제를 구현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나노기술개발과 나노융합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융합 신산업 창출을 위해 브레인웨어 기반의 나노바이오, 나노에코 분야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R&D 예산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고 정부 내에서도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이 경쟁국에 비해 적은 편이다. 민간 부문에서 상업적 성과를 거둔 성공사례가 전파되지 않아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첨단산업이 그렇듯 기술이 시작되고 상업화하는 데는 20~30년 이상이 소요된다.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첨단 기술도 상업화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조경제를 구현할 핵심 기술인 나노기술과 나노융합산업에 대한 산학협력과 정부, 기업의 더 많은 관심이 절실하다.
400여년 전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는 동화집 `옛날이야기`에 신데렐라를 수록했다. 동화에서 왕자는 유리구두로 진짜 신데렐라를 찾아냈다. 요즘 창조경제 논의는 모두가 유리구두의 주인임을 자처하면서 그 구두를 신어보려는 400여년 전의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유리구두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나노기술과 나노융합산업이 유리구두의 주인이라고 확신하면서 나노기술이 창조경제의 초석이며, 견인차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민구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mk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