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한 대구지역 로봇기업들이 사업비를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중 한 곳은 검찰이 첩보를 입수해 조사를 받고 있고, 다른 한 곳은 사업비 환수 조치를 피하기 위해 자진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로봇전문기업 A사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 4월까지 대경지역사업평가원의 1차연도 기술개발과제에 선정돼 R&D를 진행해 왔다. 이 기업은 사업과정에서 정부 자금 2억3000만여원 중 일부자금으로 실제로 구입하지도 않은 물품을 구입했거나 과제와 관련이 없는 물품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관리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으로 부터 올해 초 사업 중단 조치를 받았다.
KIAT는 이어 지난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해당 기업에 대해 현장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사업비의 50%를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KIAT는 조만간 A사에 대한 사업비 환수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이 업체에 대한 행정조치와는 별도로 검찰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A사가 기업 간 허위 영수증 발급 등으로 사업비를 가로챘는지를 수사 중이다.
또 다른 로봇기업인 B사는 대경지역사업평가원의 지난 1차연도 사업에 선정돼 교육용 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4월 사업을 마무리했고 성공판정도 받았지만 제때 사업비 정산을 하지 못했다. 이 업체는 현재 폐업 상태기 때문에 사업비 환수 조치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업체 측 관계자는 “사업비 정산 시기를 놓친 건 맞지만 최근 회계사까지 동원해 모든 서류를 다 갖췄는데도 현재 평가기관에서 회계서류를 받지 않아 정산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지역관련업계에서는 다른 산업과 달리 성과가 지지부진한 로봇기업들이 자금압박을 못 이겨 사업비 일부를 불투명하게 사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관리감독기관의 비효율적 관리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과제를 수행중인 한 기업 CEO는 “과제 수행 기업에 일주일마다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금요일에 갑자기 연락해서 월요일까지 사업 관련 서류를 만들어오라고 지시를 내려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또 한 기업인은 “과제 수행 시 물품구매계획에 융통성이 필요한데도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규정을 어겼다고 사업중단 조치를 내리는 관리기관도 문제”라며 “중소기업 R&D과제가 기업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경지역사업평가원 관계자는 “국내에는 아직 제조로봇 외에 실용로봇 분야에 마땅한 기업이 없다”며 “앞으로 로봇분야는 지역 기관들과 공동으로 상품기획을 새로 짜서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KIAT 관계자는 “정부 R&D과제는 불성실로 사업이 중단되는 비율이 통상 5% 정도 된다”며 “이번 대구지역 로봇기업의 사업비 유용건은 로봇시장 불황과 해당 기업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발생했지만 규정대로 사업비 환수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