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 한 방송장비업체는 창원시의회가 발주한 의회방송시스템 구축사업 입찰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입찰 규격서에 특정 외산장비 사용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공공기관 방송장비 구축에 관한 정부 고시를 지키라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입찰을 원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회사는 입찰을 포기했다. 이 회사 사장은 “(규격서에) 특정 외산장비를 모델명까지 넣어 강제하고 있다. 어렵게 자체 개발한 우리 장비를 놔두고 외산장비를 끼워 넣고 어떻게 입찰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국내 방송장비 시장에서 국산 방송장비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상태다.
특히 국산 방송장비 사용에 앞장서도 모자랄 공공기관이 조달 과정에서 특정 외산장비 사용을 강제하면서 국산장비 확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경남도의회는 올해 초 조달청 전자입찰로 `HD 디지털 통합 방송시스템 구축` 사업을 진행했다. 입찰 규격서는 핵심장비인 HD통합서버 컨트롤러의 규격을 `TCXD 855CS`로 명시하고, 하단에 다시 한번 `TCXD855와 완벽 연동지원`이라 못 박았다. TCXD855는 트라이캐스트로 잘 알려진 미국 N사의 통합서버이고, TCXD855CS는 이 회사의 통합서버 컨트롤러다.
방송시스템의 통합서버 컨트롤러를 특정 외산 제품으로 규격화한 것도 모자라 `연동`이라는 조건을 달아 통합서버까지 특정 외산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셈이다.
공공기관의 특정 외산 방송장비 구매 행태는 경남도의회와 창원시의회뿐이 아니다. 양산시의회, 강릉시청 등 지자체 전반에 만연해 있다.
국산 방송장비가 전무하던 시절에 외산 사용에 익숙해진 관행과 장비 전문지식 및 국산 장비에 대한 인지도 부족, 외산 장비업체와의 오랜 유착 등이 주원인으로 풀이된다.
창원시의회는 정부 고시를 위반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국산 방송장비의 공공기관·종교계 등 비방송사 시장 진출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 방송장비 구축·운영 지침`을 마련 고시했다.
전국 2만여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3억원 이상의 방송장비 구축사업을 추진할 때 제안요청서에 특정 업체에 유리한 규격을 명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제안 요청서의 사전 심의를 정부가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로부터 받도록 했다.
창원시의회는 8억원 규모의 장비구축사업을 진행하며 특정 업체의 규격을 명시했고 사전 심의도 받지 않았다.
창원시의회 방송 및 통신시설 운영 유지관리 담당자는 “정부 고시는 따르라는 지침일 뿐 내부 자체 판단이 우선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며 “특정 외산모델 명시나 사전 심의도 바꿀 계획이 없고 기존대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특정제품 사용을 명시한 이 같은 행위는 안전행정부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집행 기준`에도 어긋난다. 이 기준은 입찰 공고나 설계서, 규격서 등에 부당하게 특정 규격, 모델, 상표 등을 지정해 입찰에 부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 고시를 따르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고시 위반 행위가 줄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다.
김철수 인제대 교수는 “외산장비 사용은 일회성 선택을 넘어 향후 유지보수 비용이 고가라는 점에서 세금 낭비의 소지가 적지 않다”며 “정부 고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기관 평가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