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데이터 영구삭제 솔루션의 두얼굴

“개인정보와 기업의 기술정보보호를 위해 데이터 영구 삭제 솔루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데이터 삭제를 나쁜 의도로 사용할 수도 있어 걱정입니다.”

최근 정보보안 전문기업 CEO가 고민이라며 한 말이다. 요즘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사용하다 폐기한 PC를 통해 개인정보와 기업 비밀이 새고 있어 데이터 영구삭제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으로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폐기할 PC의 데이터 삭제는 필수이자 의무다. 정보유출로 개인이나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자료를 복구할 수 없도록 영구 삭제하는 것은 데이터 삭제 솔루션의 핵심 기능이다.

문제는 나쁜 의도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기관들이 데이터 삭제 솔루션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들어있는 데이터를 고의로 영구삭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데이터 삭제 솔루션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고민이라고 말한 CEO는 자신의 제품이 데이터를 완벽하게 삭제한다는 사실을 자랑한 셈이지만 수사관들 입장에서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PC나 휴대기기에 들어있는 데이터는 각종 비리사실을 밝힐 수 있는 강력한 증거물이다. HDD나 메모리를 압수해 지워진 데이터를 복구해 분석하는 것은 가장 일반적인 수사방법이다. 그런데 요즘엔 HDD나 메모리를 파괴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완벽하게 삭제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복구가 쉽지 않다. 물론 이마저도 복구할 수 있는 대응 프로그램이 나오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스마트폰 OS를 초기화해 데이터를 완전 삭제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답답해진 수사당국이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정보보안을 위해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은 데이터 삭제 솔루션의 순기능이지만 증거인멸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면 나쁜 제품으로 인식될 수 있다.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용자의 마음에 달렸다. 제재할 방법도 없다. 칼은 칼자루를 쥔 사람의 마음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손이 벨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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