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화학회사 바스프. 독일 루드비히스하펜에 위치한 본사 규모만으로도 실감난다.
본사 면적은 무려 10㎢. 여의도 면적의 3.4배, 축구장 1500배에 해당한다. 단일 단지로는 세계 최대다. 자동차로 단지를 돌며 공장 외관만 둘러보는 데에도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160여개의 공장을 서로 이어 원료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파이프라인 시스템 길이는 총 2800㎞에 이른다.

바스프 사업장 내에는 화물 이동을 위해 설치해 놓은 철도도 있다. 길이는 무려 230㎞다. 화물운송터미널도 내부에 있다. 이 복합운송터미널은 13개의 선로와 8대의 크레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면적 또한 축구장 40개를 합쳐 놓은 규모다.
바스프는 루드비히스하펜의 이 페어분트를 포함해 전 세계에 약 380개의 생산시설과 6개 페어분트를 보유하고 있다. 페어분트란 통합 생산체계를 뜻하는 것으로, 바스프만의 독특한 생산단지다. 바스프는 공장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해 물류비와 원가를 줄이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바스프는 지난해 전체 787억유로(약 113조566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럽발 세계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7%가량 증가한 실적이다. 영업이익도 지난 2011년보다 5% 늘어난 90억유로를 달성했다.
바스프의 제품들은 산업용 기능성 원료와 화학제품이다. 사업은 크게 5개로 나뉜다. △화학 △퍼포먼스 제품 △기능성 원료 및 솔루션 △농업 솔루션 △석유&가스 등이다. 이들 사업을 통해 바스프는 거의 전 산업에 걸쳐 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한다.
화학 부문에서는 석유화학 제품과 모노머, 중간체를 다룬다. 기본 화학제품, 접착제, 반도체·태양전지용 전자재료부터 솔벤트·가소제, 세제, 플라스틱, 섬유, 페인트, 도료·의약품 기초물질 등 포트폴리오는 매우 다양하다.
퍼포먼스 제품 부문은 디스퍼전·색소, 화장품 원료, 영양·건강, 제지용 약품 등을 다룬다.
기능성 원료 및 솔루션 부문에서는 촉매, 건설 화학, 코팅, 퍼포먼스 재료 등을 주력으로 한다. 자동차용 촉매와 코팅, 콘크리트 혼화제, 타일 접착제 등이 대표적이다.
농업 솔루션은 농약과 같은 작물 보호용 화학제품을 말한다. 바스프는 또한 독일 내 가장 큰 석유·가스 생산회사기도 하다. 유럽, 북아프리카, 남미, 러시아 및 카스피해 등에서 생산한다.
◇염료→화학비료→고압합성법→플라스틱→그리고 미래
바스프의 변천사는 산업 역사와 맞물린다. 당대 산업에서 가장 필요한 화학제품이 바로 바스프의 대표 제품이다.
출발은 지난 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리드리히 엥겔호른을 포함한 3명이 독일 루드비히스하펜에 설립한 염료공장이 바스프의 시작이다. 당시 직물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염료 공급이 절실해지자 이를 기회 삼아 설립한 것이다. 청바지의 염료인 인디고블루를 합성한 것이 바로 바스프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시대가 바뀌었다. 인구 증가로 식량 부족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이다. 농작물 수확 증대를 위한 해결책이 필요해졌다. 바스프가 20세기 초 눈을 돌린 분야는 화학비료다. 당시 바스프 연구진은 대학과 공동으로 합성 암모니아를 개발해 질소비료를 상업화했다.
1920년대 산업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유한 자원인 석유를 대체할 연료가 필요해졌다. 합성연료와 합성고무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쌓인 원료 합성 기술로 스티렌·에틸렌·비닐·메탄올 등을 합성하기 시작했다. 지난 1934년에는 세계 처음 녹음테이프를 개발했으며, 2년 후에는 합성고무로 자동차 타이어를 만들었다.
이후 세계 2차대전을 겪으며 바스프는 황무지에서 다시 출발했다. 공장은 파괴됐으며, 인력도 모자랐다. 그러나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 새로운 실험도 지속했다. 곡물용 제초제를 개발했고, 1951년에는 스티로폴을 세상에 탄생시켰다. 1953년 바스프와 셸의 합작으로 독일 최초 석유화학공장이 완공됐으며, 각종 플라스틱 원료 제품 개발로 종합 화학회사의 면모를 갖췄다.
이후부터는 끊임없는 성장이 이어진다. 미국과 브라질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까지 본격 진출하기 시작해 글로벌기업으로 커 나갔다.
◇페어분트(Verbund), 절약과 효율을 말한다
세계 최대 화학단지는 이유 없이 형성된 것이 아니다. 저렴한 인건비와 시장을 향해 생산시설을 분산시키는 눈만으로는 바스프의 대단지를 이해할 수 없다. 바스프만의 생산기법인 페어분트는 오히려 효율을 추구하면서 생성됐다. 한쪽에서는 버려야 할 열과 자원을 다른 쪽에서는 동력과 원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바스프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열과 동력이 결합된(CHP:combined heat and power)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CHP 기술로 바스프는 필요한 전기의 70%를 자체적으로 확보한다. 일반적인 전기생산 기법과 비교했을 때, 지난해 절약한 전기가 1200만㎿h에 달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약 250만톤을 절약한 셈이다.
한 공장에서 발생한 폐열을 다른 공장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지난해에는 1700만㎿h의 전기를 줄일 수 있었으며 이는 340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에 해당한다.
◇안전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
바스프 본사 건물의 모든 계단에는 `손잡이를 잡으세요(Handlaufbenutzen)`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흥미로운 점은 직원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모두 손잡이를 잡는다는 사실이다.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안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자도 바스프에서만큼은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화학단지에는 늘 큰 위험이 도사린다. 위험을 불러오는 것은 다름 아닌 부주의와 실수다. 모든 사고의 시작은 안전불감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것` 뿐이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것도 매뉴얼에 따라야 한다. 바로 세계 최대 화학회사 바스프를 지키고 운영하는 힘이다.
바스프 페어분트는 마을과 인접해 있다. 도로만 건너가면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화학단지 하면 연상되는 위험이나 오염 걱정은 전혀 없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다.
◇“우리는 화학을 창조한다(We creat chemistry)”
지난 2011년 바스프가 내건 새로운 슬로건이다. 바스프는 오는 2020년까지 화학산업 성장률이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클 것으로 예상했다. 바스프의 목표는 글로벌 화학 업계보다 2%포인트 이상 성장하는 것이다. 오는 2020년까지 연평균 6%씩 몸집을 키워 이맘때 매출 1150억유로(약 116조8270억원)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중장기 목표를 위해 바스프가 내건 `창조`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동안 바스프가 전 산업에 걸쳐 공급하며 쌓은 노하우를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뜻이다. 슬로건 속의 화학(Chemistry)은 화학물질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학반응 즉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쿠르트 복 바스프 회장은 “바스프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통합된 기술들과 노하우의 범위는 경쟁사와 차별화될 수 있는 핵심 요소”라며 “혁신 역량과 광범위한 기술 기반, 뛰어난 운영 능력, 글로벌 네트워크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강점을 결합해 `하나의` 기업으로서 가치를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루드비히스하펜(독일)=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