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34>안병엽 정통부 차관

계절의 여왕 5월을 이틀 남긴 1998년 5월 29일.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정홍식 정보통신부 차관(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역임)의 사표를 수리했다. 후임 차관에 안병엽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보통신부 장관, ICU 총장, 17대 국회의원 역임, 현 KAIST 초빙교수)을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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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엽 차관이 1998년 5월 29일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방송통신위원회 제공>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역임, 현 국회의원)은 “정 차관이 사표를 제출해 김 대통령이 이를 수리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안 차관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11회)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 감사관과 공정위 독점관리국장. 재경원 국민생활국장 등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는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안 차관은 1996년 7월 5일 신설한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 초대 실장으로 발탁된 외부 영입인사였다. 김대중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나가 일했다. 정보통신부 복귀 후 1998년 3월 15일 정보통신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품이 합리적이면서 소탈한 외유내강형이다. 그러나 조직 장악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현 변호사)으로부터 차관 내정을 통보받았다.

김 실장은 안 차관에게 “차관으로 내정됐으니 열심히 일해 달라”는 김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배순훈 장관(현 S&T 회장)은 “청와대에서 사전에 안 차관 임명에 대한 의중을 물어와 좋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5월 29일 오후 국무총리실에서 김종필 국무총리서리(국무총리, 자민련 총재 역임)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김 총리서리는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검찰수사를 의식한 듯 “내부 기강을 바로 세워 지식정보화를 잘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 차관은 임명장을 받은 뒤 곧장 정보통신부로 돌아와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안 차관은 취임사에서 “우리는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중대한 기점에 서 있다”면서 “지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세계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차관은 이어 “미래를 지향하는 창의적인 자세로 과거의 답습을 벗어나 새로운 각오로 그동안 추진해 왔던 각종 정책을 내실 있게 추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정보통신부는 그해 6월 11일 후속 실·국장 인사를 단행했다.

안 차관이 맡고 있던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에 이교용 정보통신지원국장(초대 우정사업본부장, 프로그램심의위원장 역임, 현 한국우취협회장)을, 정보화기획실장에 변재일 국무총리실 산업심의관(정보통신부 차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 역임, 현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을 임명했다.

이교용 실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5년 행정고시 16회에 합격, 체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 국제행정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프랑스 파리9대학 전기통신 및 정보통신관리학 박사과정과 프랑스 체신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이어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보통신부 국제협력관으로 재직 시 한미 통신협상 한국 측 대표로 맹활약했다. 김대중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 근무 후 돌아와 정보통신지원국장으로 일했다.

변 실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5년 행정고시 16회에 합격, 국방부를 거쳐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과 산업심의관으로 재직했다.

정보통신지원국장에는 구영보(우정사업본부장 역임, 현 SK텔레콤 고문), 우정국장에는 석호익(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KT 부회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 ETRI 초빙연구원), 국제협력관에는 신현욱(부산체신청장 역임), 정보화기획실 정보기반심의관 유영환(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씨가 각각 임명됐다.

배순훈 장관은 PCS사업자 선정과 관련, 정보통신부 고위관료에게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한 LG그룹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회장 비서실에서 구 회장이 지방에 내려가 전화 연결이 안 된다고 했다. 배 장관은 급한 일이니 곧바로 구 회장과 연결시켜 달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통화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배 장관의 말.

“회장 비서실에서 구 회장과 전화연결이 안 된다고 해요. 구 회장과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장관이 급히 통화를 하겠다는데 연결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인데 통화가 안 된다고 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불쾌했어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모 언론사 사장이 구 회장과 저녁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 왔더군요. 거절했어요. 1년 후쯤 구 회장과 만나게 됐어요. 구 회장이 당시 이야기를 하면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잘못됐다`며 사과를 하더군요. 당시 입장이 난처하니까 전화를 안 받은 거였어요. LG그룹의 간판 전문경영인인 강유식 부회장이 중재에 나서 오해는 풀었습니다만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배 장관이 장관으로 발탁되자 김준성 회장(작고, 한국은행 총재, 경제부총리, 대우통신 회장, 이수그룹 회장 역임)이 조용히 불러 몇 가지 당부를 했다.

배 장관의 회고.

“김 회장이 `절대 기업에서 돈 받지 말라`면서 요주의 업체를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요. 극히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장관이 되면 부하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데 필요하면 나에게 말해라. 그러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해 주겠다`고 하셨어요.”

그해 6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은 정보문화의 달을 맞아 세계 최초로 인터넷과 PC통신이라는 뉴미디어로 국민과 사이버 인터뷰를 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국정 생각과 정책 추진 방향을 듣는 새로운 인터뷰였다.

이 인터뷰는 `네티즌과 함께하는 젊은 DJ`라는 주제로 나우콤이 주최하고 전자신문과 동아일보, 매일경제가 후원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식의 인터뷰였다.

처음 이런 기획안을 청와대에 제시한 문용식 전 나우콤 사장(아프리카TV 사장 역임, 현 민주통합당 정치쇄신위원)의 증언.

“처음 기획안을 만들어 청와대 공보수석실에 제안했더니 아주 좋아하더군요. 박선숙 청와대 부대변인(18대 국회의원 역임)이 제안서를 가지고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자신문 등 후원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식이었습니다.”

그해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인터넷과 PC통신으로 네티즌의 질문을 접수했다.

PC통신 나우누리에 개설한 `네티즌과 함께하는 젊은 DJ`와 나우누리 홈페이지로 정보통신과 문화, 교육, 경제 분야의 관심사항을 이메일로 받았다.

참여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주부, 공무원 등으로 다양했다. 질문도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정보통신 정책, 외국 문화, 실업 대책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들이 보낸 질문을 마감한 결과 모두 1750건이 접수됐다. 이 질문은 27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정보통신 분야 14건, 정치와 사회·문화 분야가 13건이었다.

문 전 사장의 이어지는 말.

“접수한 질문을 내부 TF를 구성해 항목별로 정리해 청와대로 넘겼습니다.”

김 대통령은 6월 18일 네티즌의 질문에 답변했다.

김 대통령은 사이버 인터뷰에서 지식정보화 추진 정책과 향후 개선 방향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통신산업 육성과 관련, “고속모뎀과 콘텐츠 등 정보통신 고부가가치 지식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정보통신 정책방향에 대해 “고속모뎀, 인텔리전트 TV, 차세대 이동통신, 위성방송장비 등 우리가 경쟁력 우위에 있는 전략품목을 발굴해 적극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또 “정보화촉진기금 1000억원을 지원해 소프트웨어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2002년까지 5000여개 정보통신 벤처기업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생활 속의 정보통신을 위해 1인 1PC 보급과 1인 1ID 갖기 운동 등 정보화 실천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공공 부문의 정보화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 부처의 차관이나 기획관리실장, 시도의 행정 부지사(부시장)가 정보관리자(CIO) 역할을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경제위기와 관련, “은행을 통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막혀버렸는데 중소기업 지원 효과는 언제부터 느낄 수 있겠느냐”는 네티즌 질문에 “중소기업 지원 실적이 저조한 은행은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며 일선 금융기관의 `성의`를 면밀히 점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네티즌의 숙원 사항인 `컴퓨터통신에 부과되는 전화료 인하`에 관해 “PC통신용 전화요금을 대폭 인하하면 통신 이용시간이 크게 늘어나 접속이 어려워지는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요금인하는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대통령은 `청와대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법`에 대해 “일정이 바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을 시간조차 없는 것 같다”면서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린다”고 털어놨다.

사상 최초로 이뤄진 김 대통령의 사이버 인터뷰는 전자 민주주의 새 장을 여는 시발점이 됐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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