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창조하는 사람들]<1>류원 ETRI 부장 "내 연구 시한부 삶도 못막아"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개발의 핵이다. CDMA와 DRAM, 전전자교환기, 와이브로 등 굵직한 연구 결과물이 출연연에서 쏟아져 나왔다. 결과물 하나하나엔 “연구현장에서 뼈를 묻고싶다”며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렸던 과학기술인의 열정이 녹아 있다. 전자신문은 밤을 낮삼아 24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연구실을 지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사람들의 삶을 매주 심층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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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식당은 저녁 때도 늘 붐빈다. 공간이 작진 않지만 저녁에 이 식당을 이용하는 인력이 매일 550명 정도다. ETRI 인력 4명 가운데 1명이 야근을 위해 이용하는 셈이다. 이들이 야근하며 받는 시간외 수당은 1인당 월평균 7만원선이다. 돈 때문에 야근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저녁식사 뒤 최근 TV 콘텐츠 지능형 서비스 기술 개발로 주목받은 류원 스마트스크린융합연구부장을 찾았다. 류 부장은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늘 밝고 즐겁게 일한다.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남았으니 그냥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사는 게 좋겠다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 미친 듯이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암 크기가 3.2㎝에서 0.4㎝ 줄었습니다.”

류 부장이 췌장암 3기말~4기초 진단을 받은 건 3년 2개월 전이다. 지금도 한 달에 세 번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업무로드가 걸리다보니, 자연스레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운다. 류 부장은 자신을 “바빠서 아픔을 잊고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류 부장을 마주하면 당황하게 된다. 짙은 다크써클에 얼굴색이 짙은 잿빛이다. 동남아 출신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 항암제 탓이다.

부산출신인 류 부장은 초·중·고교를 다니며 거의 1등을 놓쳐보지 않은 수재형이다. 눈동자에는 총기가 넘친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많이 불편하지만, 그걸 느끼지 않고 살았습니다. 처음 불편하다고 느낀 것이 `소아마비 환자는 의대에 지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입니다. 그때 많이 방황했습니다. 때늦은 사춘기를 겪은 셈입니다.”

류 부장은 솔선수범형이다. 밑에 직원들이 일을 안 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부서는 ETRI 평가에서 3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다 좋은데 하나 아쉬운 게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게 아빠가 만든거야, 한번 써봐라`하고 말할 수 있는 자긍심이나 낮에 논쟁하다 저녁에 막걸리 한잔 마시며 소통하는 `연구낭만`이랄까 그런 게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류 부장은 대학 졸업뒤 삼성SDS에 갔다가 ETRI로 온 사례다. 미국 조지아텍 입학허가도 받은 상태였지만, 집에서 반대해 유학을 포기했다. 대신 대전 근무로 인해 류 부장은 24년째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류 부장은 대학으로 `도망`갈 기회가 2번이나 있었지만, 모두 포기했다. 함께 일하던 전경표 전 단장과 최문기 전 원장이 못가게 잡은 것도 있지만, ETRI가 좋고 연구가 좋아서다.

“PC통신의 효시인 KT다이얼모뎀이나 하이텔 통신을 제가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처럼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어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프로슈머가 가능한 시대를 열 것입니다.”

류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회고하며 충고도 했다. 오명 전 장관이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대규모 과제를 했지만, 지금은 작은 과제, 단기과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전문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초·원천연구로 좀 멀리, 길게 보자는 주문이다.

“지금이 최저점입니다. 출연연 연구환경도 바닥까지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면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죠.”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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