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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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디에이고대와 워싱턴대 연구진은 얼마 전 시속 40마일(64.37㎞)로 주행하는 자동차를 뒤쫓으며 전자제어식 제동장치를 멈추게 하는데 성공했다. 차량내 전자식 장치를 제어하는 주컴퓨터를 해킹한 것이다. 운전자가 차량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불만을 품은 중고차상 직원이 판매대금이 미납된 차량 100여대를 원격으로 경적이 울리거나 엔진을 갑자기 꺼지게 하는 소동을 일으켰다. 실제로 보안업체들은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로 차량 컴퓨터에 접속해 원격으로 조정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자동차를 말(馬) 없는 마차(horseless carriage)라고 불렀다. 달리는 마차 속에 말을 숨겨 안보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도 자동차 성능을 표시하는 100마력이란 단어는 말 100마리가 끄는 힘을 의미한다. 이런 자동차가 정보기술(IT)과 만나면서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마차 속에 말을 숨겨 놓는 것이 아니라 이젠 자동차 속에 컴퓨터를 심는다. 강력한 동력기관을 장착하고 언제나 외부 네트워크에 접속해 움직이는 모바일 생활공간이 자동차의 현재 모습이다. 도로와 톨게이트, 그리고 인공위성이 네트워크로 자동차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자동차가 컴퓨터시스템에 의존하고, 운전자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다보니 바이러스나 해킹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우스 캐롤라이나대학은 차량 타이어 공기압 감지시스템을 오작동시켜 차를 세우게 유도한 후 강도 같은 범죄에 자동차 해킹을 악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자제어 및 네트워크 장비로 자동차의 편의성이 높아졌지만 해킹 피해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하면, 이런 장면도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한 사무실. 헤드셋을 쓴 남자가 정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바라보며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다. 사무실 모니터에는 자동차 수백 대가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의 모습이 보였다. 테러범이 컴퓨터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이 시속 100㎞ 속도로 달리는 차량 한대를 따라간다. 잠시 후, 자동차가 갑자기 멈추며 꼬리를 물고 달려오던 수십대 차량과 연쇄 충돌을 일으킨다. 테러조직이 차량 해킹으로 브레이크를 오작동 시켜 대형 참사를 일으키는 시나리오다.

세계는 지금 전혀 다른 차원의 전쟁을 경험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전쟁`이다. 지난달 20일 방송·금융기관 6곳의 전산망을 한순간에 다운시킨 사건은 사이버 전쟁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출처불명의 해킹공격으로 방송국과 금융기관 서비스가 순식간에 마비된다. 댐과 고속철도 등 국가 기간시스템을 교란하는 충격적 상황도 벌어진다. 사이버 전쟁이 일어나면, 통신망에 연결된 정보기술 단말기들이 어떤 전투를 벌일 지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렵다. 매일 운전하는 자동차가 한순간에 무인 폭격기로 변신한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소크라테스도 “세월이 흐르면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기에 넉넉한 땅을 가지려면 이웃 나라의 땅을 조금 떼어 와야만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히 전쟁을 하겠지.”라고 말했다. 어쩔 도리가 없다. 남은 것은 어떤 싸움의 기술로 승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제는 도시 어딘가에 핵폭탄이 떨어질 가능성은 줄어드는 대신 컴퓨터 해킹으로 상수도 설비를 공격할 가능성이 커졌다. 총알과 포탄이 아닌, 해킹과 바이러스가 빗발치는 미래 사이버 전쟁에서 우리만의 필살기(必殺技)가 필요하다.


주상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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