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균 홍익대 산업대학원교수(애니메이션 감독·baik2596@daum.net)
입체 영상은 빠르게 대중화돼 요즘은 극장이나 안방에서 쉽게 즐길 수 있다. 안경을 쓰고 화면 속으로 빠지다 보면 미래 영상이 가져다 줄 기술의 한계와 영상 콘텐츠 산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영화 초창기,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해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어느 커다란 카페에서 `열차의 도착`을 상영했다. 영화는 3분의 짧은 흑백필름으로, 소리도 없고 편집 개념도 없는 단순한 기차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불과했다. 하지만 관객은 열차가 진짜로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해 여기 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다. 스크린을 통해 보는 초창기엔 소리도 없는 흑백의 움직임만으로도 감동을 줬다.
이후 영상에 익숙해진 관객은 뭔가 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갈망한다. 영화가 과학의 힘을 빌려 계속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는 이유다. 유성·컬러 영화, 시네마스코프, 아이맥스, 돌비서라운드, 입체 영화 등 가히 100년 영화 역사는 영상기술의 발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영상 테크놀로지를 변화시켰다. 입체 안경을 끼지 않고도 3D 홀로그램 영상을 볼 날도 멀지않았다.
상업 입체영화는 미국에서 제작한 `사랑의 힘(The power of love)`이 최초다. 이후 1950년대 텔레비전 보급으로 극장 관객이 줄고 대안으로 입체 영화를 제작하게 되는데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며 이후 수십여 편을 제작해 1차 입체 영상 붐을 이룬다.
그러나 기술력 한계로 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1970∼1980년대 2차 입체영화 붐을 맞게 된다. 컬러 TV 대중화와 케이블 방송 등장으로 인해 관객이 줄고 대안으로 `죠스` `13일의 금요일` 등 다시 입체 영화 제작 붐이 일었다.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실패 원인은 대체적으로 입체와 적합하지 않은 장르와 내용 선택, 스토리가 부족한 입체 영상만의 강조, 기술력 부족, 입체영상 연출력 미흡, 경험부족 등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3D기술력과 제작 능력은 인정받고 있다. 1968년 이규웅 감독의 `천하장사 임꺽정`과 1968년 임권택 감독의 `몽녀`를 시작으로 2006년 이경호 총감독의 한미합작입체영화 `파이스토리`, 2007년 4D로 제작한 20분 분량의 `둘리의 모험`, 본격 3D 애니메이션 `토우대장 차차` 등이 만들어낸 결과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동향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영상 산업에 관심을 높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3D TV시장을 중심으로 기술적 진화가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차세대 경쟁력 있는 영상 산업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론도 있지만 이제 국내에서도 입체영상은 영상 산업에 있어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그리고 이런 세계적 흐름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문제는 입체 영상이 국내 차세대 영상산업으로서 제대로 성장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내 현실에 적합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3D 영상 제작유형은 크게 실사, 실사와 CG합성, 컨버팅, 애니메이션으로 나뉜다. 실사는 두 개의 렌즈로 촬영한 좌우 두개 영상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촬영 현장과 후반작업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카메라가 무겁고 장비가 복잡하며 촬영 시간이 증가하는 등 제작비 상승 요인이 된다. 실사와 CG합성은 CG영상과 실사 영상의 포커스 깊이 값 조정이 복잡하고, 사전에 합성 부분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컨버팅은 업체 간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 작업자 기술과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업체 간 편차가 심하고, 노동 집약적이며 하청구조로 볼 수 있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제작 프로세스 자체가 여러 층으로 이뤄진다. 연출이나 레이아웃에서 사전에 충분한 입체감 설계가 가능하다. 프로그램에 의한 작업으로 기술적인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 제작비도 기존 애니메이션의 10% 안팎이 상승하는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제작기간도 평균 애니메이션 기준으로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장점은 애니메이션이 입체영상 콘텐츠로서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애니메이션이 쌓아올린 기획력과 제작 경험, 기술력을 감안한다면 애니메이션이야 말로 차세대 글로벌 입체영상 콘텐츠 산업으로서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