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엠 본사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르는 `쓰리엠 이노베이션 센터(3M Innovation Center)`. 그 천장에는 둥근 스크린이 있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그 스크린의 영상을 보면 작은 글씨가 쓰여진 상자 수십개가 움직이며 붙었다 떨어진다. 이노베이션센터 홍보 담당자인 델 카우스 부장에게 “화학 주기율표인가요?”라고 물었다. “언뜻 보면 그렇지만 아닙니다, 쓰리엠의 46개 기술 플랫폼을 소개한 겁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1등 소재 업체의 비결
쓰리엠은 직원들조차 자사 제품이 어떤 산업에서 쓰이는지 다 알지 못한다. 광학필름·의료·안전장비·전자·자동차·건설·전력·통신·생활용품·사무용품 등 1만7000여종을 보유하고 있다. 생활과 산업 곳곳에 쓰리엠 제품이 안 쓰이는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쓰리엠 소재는 용도가 다양하다.
이 회사는 지난해 전 세계 매출액 299억400만달러(약 33조3430억원), 이익률 14.9%를 기록했다. 100년 넘게 다양한 분야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해 왔다. `포스트?`과 `스카치테이프`가 유명하지만 쓰리엠이 판매하는 제품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 비결은 뭘까. 대표 제품을 전면에 전시하고 이목을 끌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쓰리엠이 강조하는 대목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반 기술들과 기술들이 서로 융합하는 모습이었다. 들여다보면 46개 기술 플랫폼은 필름(Fi), 디스플레이(Di), 세라믹(Ce), 연마재(Ab), 나노기술(Nt) 등 다채로운 분야를 망라한다. 증기(Vp)와 치과 교정 재료(Do)도 있다. 100년 넘게 축적해 온 기술들을 하나의 제품에 응축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게 바로 쓰리엠의 저력이다.
투명 테이프를 예로 들면 필름과 접착 기술, 코팅 및 확산 기술, 공정 기술이 집결됐다. 간단한 테이프 하나지만 유연성을 띄고 쉽게 말리지 않고 접착력이 좋고 투명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각종 노하우를 쏟아 붓는다.
기술 플랫폼 간 융합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들은 5개 산업군에 따라 나뉜다. 일반소비재(총 매출의 15%), 전자·에너지(15%), 헬스케어(15%), 안전·그래픽스(15%), 산업용 소재(40%)다. 산업 소재는 연마재의 일종인 샌드페이퍼, 접착제, 정수시설 등이다. 전자·에너지 재료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등이 있다.
카우스 부장은 “휴대폰 하나에 들어가는 쓰리엠 제품이 20종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충치 치료 소재, 각종 패치, 투약 기구 등은 헬스케어 사업의 주종을 이룬다. 마스크, 장갑, 보온재, 서명·지문 인식기 등은 안전·그래픽스 분야다. 전 세계 도로표지판에 쓰이는 재귀반사필름(DBEF)도 대부분 쓰리엠 제품이다.
최근 개발한 제품만도 레이어를 270개 사용한 윈도 필름, TV 등에 쓰이는 글라스밀 필름, 반사필름, 빛 제어 전구, 고전압용 배터리 소재, 배터리 용량을 늘려주는 실리콘 기반 양극 물질, 터치 패널과 LCD 패널 사이를 매워주는 소재, 세라믹 섬유, 태양광·플렉시블·방수 패널, 멀티터치스크린, 무통주사, 무반사필름 등으로 무수히 많다.
◇매년 1500개 제품 개발, 기술은 100년 넘게 축적
쓰리엠은 매년 신제품을 1500개가량 선보인다. 각 제품은 출시 첫해 후 5년 안에 매출액을 40%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기술 데이터베이스를 꾸준하게 쌓아 오다가 시장이 개화하는 시점에 맞춰 제품을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기술 플랫폼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1900년대 초 쓰리엠이 개발한 연마재는 여전히 조금씩 개선한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고, 기술 플랫폼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상용화 할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는 기술도 있다. 포스트?은 접착 기술을 개발한 지 9년 만에 세상 빛을 봤다. 1960년대에 주로 쓰이던 오버헤드프로젝터(OHP) 필름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OHP 렌즈와 필름은 수많은 다른 기술의 모태가 됐다. LCD 광학필름인 DBEF 필름 안에 수만개 마이크로 프리즘이 들어가는데, OHP 렌즈가 수만개 박혀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LCD 패널의 도광판도 OHP 렌즈 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중소기업의 집합체
쓰리엠은 8만70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이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조직 운영 방식을 취한다. 기술 개발은 대기업처럼 중앙 연구소를 중심으로 집중화 하고 영업은 고객사와 지역별로 흩어져서 밀착 대응한다. 조직을 기술 플랫폼, 고객 플랫폼, 공급망 플랫폼, 글로벌 인프라 4개 축으로 나눠 각자 사업을 영위한다.
이인희 본사 부사장은 “이전까지 다소 소홀했던 마케팅도 최근 강화하고 있다”며 “고객 수요를 파악해서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경기 수원, 화성, 전남 나주에 제조 시설을 구축하고 연구개발(R&D) 센터를 두는 등 한국 기업과 협력 관계를 탄탄하게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세인트폴)=
오은지기자 onz@etnews.com